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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네여자는 안할란다

2013.02.6 16:05

어제까지도 저에겐 썸남이 있었더랬습니다.

모임에서 만난 그는 생김도 귀엽고

말하는 것도 다정다감하고

처음보기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쪽에서도 저에게 호감을 보였고,

1년여 간 연애를 쉬고 있던 저는

오랜만에 가슴이 콩닥콩닥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관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전,

모임에서 달랑 한번 보았을 뿐,

따로 한번 만날 새도 없이,

직장관계로 제가 지방으로

한달 넘게 내려가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려 가기 전에 썸남은

사귀자 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고,

"네가 이렇게 가지만 않으면

사귀자고 할텐데..." 정도의 얘기를 했었습니다.

 

저도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고,

나중에 돌아왔을 때도

서로 좋은 감정이면 만나보자."

정도로 여운을 남겼구요.

 

제가 지방으로 간 첫 일주일 간,

썸남은 준연인 내지는 씨버러버 모드로

저를 잘 챙겨줬습니다.

 

숙소는 어떠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떠냐?

밥 잘 챙겨 먹고 옷 따스하게 입고

남자 조심해라.”

 

등등등의 이야기를 열심히 보내주었어요.

(온리 카톡으로.)

 

그러다,

어느날 급진지모드로

"너무 보고 싶어서 힘들다."

이런 얘기도 하였어요.

(물론 카톡으로.)

 

제가 농담으로

"정 그러면 다른 처자를 잠깐 만나보라."

했더니,

"마음에도 없는 말하지 마라.

난 너만 기다릴거다."

류의 비장한 말도 했지요. 

 

저는 20대 극후반.

그는 30대 초반.

 

얼굴 딱 한번 본 사이에

좀 오글거리기는 했지만,

이왕 말하는 거 까똑까똑 말고

늦은 밤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읊어주면

썸의 재미도 더 할 꺼인데...’

약간 아쉬운 가운데 나름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곧,

"네가 나보다 스펙이 월등해서

나중에 날 외면할까봐 걱정된다.

그래도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거다."

 

"조건이 좋은 다른 남자한테 가버릴까봐 

질투가 난다."

 

"너는 남자를 볼 때 어떤어떤 점을 보느냐.

요즘 여자들은 조건을 많이 따진다고 하는데.."

 

"나는 돈이 없는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한번 얼굴보고,

까똑 열흘한 사이에 주고받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저는 약간의 부대낌과 함께

정신이 번쩍 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애정만세이상주의자라 해도

본격 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철모를 때부터 만나 죽고 못살았던 사이라면 모를까;;)

 

이 사람에게

괜찮아요오라버니..

전 사랑만 있으면 돼요흑흑흑"

이러고 있을 상황은 아니잖슴까?

 

그렇다고 "시러염!" 하고 내뺄 마음은 없었고,

"조급하게 앞서가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하자.

님이 하고 있는 일도 전망성이 있어 보이니

기운내고 열심히 살아라."

라는 말로 다독여 주었습니다.

 

썸남은

"고마워너같은 여자는 세상에 없다."

라고 감격 모드.

 

(이상 모두 카톡으로.)

 

그러나...

이런 진지한 대화를 나눈 바로 다음날부터

그는 묘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잘하던 카톡이 뜸해지더라구요.

그리하여 제가 먼저 보냈습니다.

 

뭐해?”

아 고거 참 뻘쭘하더군요.

남자분들의 고충을 좀 이해하겠습니다.;;

 

좌우간 며칠간 제가 먼저 연락하고

그닥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

어느 순간 대화가 툭끊겨

실망하는 밤이 몇번 지나고 보니,

 

저는 뭥미?’ 벙찌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묘하게 공허한 마음

야식과 라면으로 채우려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낮에는 빵과 과자로 채웠구요.

 

불과 며칠만에 보름달같이

빵빵하게 차오른 얼굴을 거울로 보면서

저는,

그래!! 나의 폭식은 

심리적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나도 그 남자를 좋아하고 있음을 

쿨하게 인정하자!’


결심을 하고 진솔한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도 너에게 호감이 있고

어느 순간부터 많이 의지하게 된 것 같다.

일이 끝날 때까지 몇 주간 만날 수도 없는데

연락도 잘 안되니깐 마음이 허전하다."

 

옥을옥을..


그래도 폭식하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눈 꽉 감고 send를 꾸-.

 

그리고 썸남의 답장이 왔어요.

 






"날 떠나고 싶니?"

 

뭥미?

떠나라는 말인가? --a

잘 이해가 안되어서 멍 때리고 있는데

 

"난 널 이미 내여자로 생각하고 있다.

네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노력하겠다."

 

그 오글거리는 대사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ㅋㅋㅋ

 

썸남의 이 멘트가 팔할은 구라일거라는

짐작을 못하는 바는 아니였으나,

마음만은 준연인 관계로 접어들었습니다.

 

무슨 음식 좋아해?”

나중에 뭐뭐 먹으러 가자.”

이런 계획도 세우고

암튼 전 잘 지내보고 싶었어요.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그 바로 다음날.

카톡하던 중에 제가,

오늘 회식에서 유명한 맛집 가서 

뭐뭐 먹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썸남이 갑자기 이렇게 물어왔어요.

 

"그래서 지금 몸무게 몇?”

 

가뜩이나 최근 폭식으로

급격히 팽창한 하복부를 주무르느라

멍이 들 정도여서 뜨끔한 건

저의 자격지심이였겠지만,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무례하지 않슴까?

 

"어머여자한테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몇 정도까지면 봐줄건데?"

라고 받아넘기려니,

 

"뚱뚱하지만 않으면 된다.

근데 지난 번에 보니깐 

너 가슴이 커보이더라.

브라사이즈가 어떻게 되느냐?”

 

몸무게 얘기에서 아리까리하게 나쁘던 기분은

본격적으로 상했습니다.

연인 사이에도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하니깐 황당하기도 하고,

 

내 진심을 오픈한 바로 다음날

이런 얘기를 듣고 있을라니깐,

날 뭘로 보고 이러는거지?’

머리가 핑핑 돌았어요.

 

그 와중에 썸남은 계속

“80B? 80C? C맞구나??

그지? C?”

이러면서 깐족대고 있었구요.

 

더 참지 못하고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더니

그제서야,

화났어

네 가슴이 예뻐보여서 그런거야.

넌 외모 뿐 아니라 마음도 완벽하다.”

등 급하게 수습하더군요.

 

근데 저도 저 따우 말한마디에

홀랑홀랑 넘어가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여전히 불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까똑까똑.

 

"어제 네가 꿈에 나타났다휴우.."


"어떤 꿈이었는데?” 물어 봤더니,


"네가 섹시한 옷을 입고

나를 유혹해서 덮치는 꿈이었어.

너는 까만 스타킹을 신고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 그랬구나..

근데 꿈속의 그 여자랑 나는

좀 많이 다른 거 같네?”

라며 불쾌한 뉘앙스를 숨기지 않았더니,


눈치는 빨라서,

그런게 다 자연스런 사랑의 표현이 아니겠느냐?”

 

...

 

그리고 연이어.

"난 널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육체적 결합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한달 동안 기다리는 남자 봤느냐?"

 

제가 사귀고선 한달도 아니고...;;”

했더니,


"우리 처음 만난 날부터 해서

네가 돌아와서 만나면 (두번째 만남이겠구나.;;)

그때는 이미 한달이 넘은 시점이지 않느냐.

난 이미 진작부터 너를

내여자로 여기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런거냐?"

라며,

요상한 계산법과 함께

무려 삐진 시늉까지.

 


아 진짜...

 

저도 과년을 목전에 둔 나이에,

철벽녀도 아니고,

외로움에 잠을 설치는 밤들도 허다한 와중에

썸남에게 꽂힌 것이므로

그와의 팟팟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거든요?

 

그치만 모임에서 한번 만나고

몇주간 주주장창 카톡질만 한 사이에


처음 둘이 만나면 팟팟부터 하자

까똑까똑 하는 것은 쫌 많이 아니잖슴까.

 

잠시나마 그 놈에 대해 품었던 desire

한순간에 짜게 식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그래도 내 썸남이니까,

좀 부족하고 오글 내지 허세 멘트를 날려도

호호호 받아주고 이모티콘으로 격려해주었건만,

 

이번엔 지랄지랄 연속으로 장문을 날렸어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보인거냐.

우리가 여지껏 카톡질 말고 한 게 뭐가 있느냐.

너님이 나한테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이라도 한번 한적이 있느냐?"

 

그 놈은 움찔했는지,

"미안하다내가 나쁜 놈이다.

꿈 얘기를 괜히 꺼냈다."

라며 자책을 했(는 듯했)지만

 

분이 안풀린 저는

"나도 기준이란 게 있다.

이건 내 기준이 아니다.

못 받아들이겠으면 다른 여자를 만나든지,

맘대로 해라!" 했고,

 

"난 너밖에 없어.

기다릴게참을게ㅠㅠ"

불쌍모드로 빕디다.

 

내가 너무 했나?’

미안한 맘에 좀 마음이 누그러지려는 찰나.

 

"그래도 내 입장도 좀 생각해줘.

남자는 참기가 좀 힘들어."


 

그동안 (제 또래 여성들보다 훨씬 두터운)

감성의 뭉치 아래 덮혀 있던

이성의 주판알이 그제서야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동안 자신에 한 얘기를 종합해 보면

삼십대 초반에 진로가 확정되지 않아 준비중모드 백수

- 경제적 상황이 열악함

- 준비할게 많아 시간도 없음

+

- 가끔씩 연락도 안됨

성욕은 만땅 


...

이 꼬릿하고 익숙한 스멜...



그렇습니다.

저는 머지않은 꼬꼬마 시절에

이런 연애를 해본 적이 있었던 겁니다.

 

과년이 가까운 나이에 취업 준비한다고

부모님께 매일 만원씩 타서 쓰는 남친 만나서,

일주일에 한번 간신히 만나는 거

김밥천국에서 밥먹고,

추운날 공원벤치에서 자판기 커피마시고,

도시락 싸다주고

용돈 쥐어주고,

모텔비는커녕 비디오방 갈 돈도 없는데

성욕은 하늘을 찌를 듯 충만하여

대실 오천원짜리 여인숙에서라도


쉬었다 가자는 끈덕진 요구

정떨어져 결국 헤어진 흑역사.

그래도 그때는 어렸으니깐,

시간이 지난 

지금은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이지만,

내 나이 서른줄에 그걸 반복하는 건 미친 짓..

 

정신이 퍼뜩!! 듭디다...

95%정도 마음 정리를 하고

썸남과 마지막 대화를 나눴어요.

 

"공부하고 일도 하고 시간이 부족할텐데

여자친구 챙겨줄 여유가 있겠냐."

 

눈치를 챘는지,

내여자하기 싫은거야?

너를 만족시킬 수 있게 노력할께.”

 

"남자 앞길 막는 여자는 되기 싫다.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ㅎㅎㅎ

정 안되면 자기가 나 먹여 살려 주겠지."

 



끝까지 어이가 없어서

그 전화를 끊고는 

핸드폰을 꺼버린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마음이 100% 확실해지네요.


그의 카톡 아이디부터 차단하고

전화가 오지 못하게 번호도 바꿨습니다.


아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상쾌하고 후련합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언젠가는 저도 좋은 인연 만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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