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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지키지 못해 미안해

2013.04.18 17:27

안녕하세요 홀리겠슈님 ^^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한가한 일요일에 방구석에 누워서 이불로 온몸을 감싸안은 채;; 농약을 드링킹하고 있던 서른 두어살의 처자입니다. <(__)> [황망한연애담] 그 남자의 뒷걸음질 (바로가기 뿅!!)이라는 글을 보고..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 하나를 꺼내놓을까 싶어서요... 이걸 꺼내놓으면 저도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그에겐 이미 끝난 이야기이지만저에겐 끝내야 할 이야기니까요..

 

그를 처음 만난 건 

제 나이 22살 적, 대학교 3학년때였어요.

학교 선배가 본인의 친구들이랑

우리들(본인의 후배)이랑 엮어

단체미팅을 시켜준다고 했었어요.

 

소개팅은 몇 번 해봤지만,

여럿이짝이 정해지지 않은 채

우루루 모여노는 그런 미팅은 처음이었어요.

 

선배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라는 그 분들과의 첫 만남은

무척 재미있고 유쾌했습니다.

주선한 선배 1남자 3여자 3명의 만남이었어요.

호프집에서 맥주를 먹었고,

2차로 노래방을 갔었던 것 같아요.

 

호프집에서 주선자는 왕자리에 앉고

저희 3:3은 일렬로 마주보며 쭈루룩 앉아 있는데

제 자리는 맨 왼쪽 끝.

그는 제 앞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시끌벅적 분위기를 재미있게 유도하는 건

주선자와 나머지 두 분의 몫.

이 사람은 말없이 앞에 놓인 강냉이;;만 먹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오른쪽을 바라보며 그 쪽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문득,

제 앞에 앉아계신 분이 심심하실 것 같아서...

몇 마디 말을 걸어보았어요. 

 

... 어느 학교라고 하셨지요..?”

 

“XX 대학교요.”

 

...

 

무슨 과세요..?”

 

법대요.”

 

...

 

딱히 아웃사이더는 아닌 것 같았지만,

별로 말이 하고 싶으시지 않으신가

싶어서 전 다시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추어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러다 문득 앞을 보니,

그의 앞에 있던 강냉이 접시가 비어 있더라구요.

 

강냉이 더 드릴까요?”

 

아니요.”

 





그것이 그날 그와의 대화 전부였습니다.

 

노래방에서제일 낮은 점수가 나오면

음료수를 쏘는 내기 등을 하며 수더분하게 놀았고,

아마 그 오빠들도 유행하는 예쁜 여성옷차림이 아닌

꾸미는 것도 잘 모르는 순진한 우리들을 보고

그냥 동생들과 같은 마음에

그저 재밌게 잘 놀고 헤어진 듯한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한 2주가 지났나..?

주선자 선배가 MSN을 통해 말을 걸어왔습니다. 

 

네 앞에 앉아있던 걔 기억나?

걔가 네 연락처를 물어보는데 가르쳐줘도 되냐?”

 

오잉앞에서 강냉이만 집어 잡숫길래

미팅에 별로 관심이 없으신 분인줄 알았는데요??”

라며 놀라는 제게,

선배 또한 본인도 놀랐다..

영감같은 놈이 내 연락처를 묻길래,

장난인가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좀 끌어봤는데

일주일 지나고 또 물어보길래,

진짠가 싶어 저한테 연락을 한 거랬어요.

 

그렇게 만난 그 사람은

 

 

 

역시나...

 

 

 

참 과묵했어요.

 

.. 분위기를 달갑게 띄운다거나

애교를 부린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였지만,

믿음직스럽고 묵묵히 듬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눈이 내리던 12월에 데이트를 했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에게

[문자]로 사귀자고 말을 할 정도

연애를 잘 모르고 부끄러움도 많은 사람이였어요.

 

그렇게 우리는 제가 3학년 말이였던 그 겨울,

우리는 사귀게 되었습니다. 

 

작은 거 하나 챙겨주는 것에도 

서로가 감동하고.. 좋아하고.. 기뻐했어요.

함께 서점에 가면 도 사주고..

눈내리는 고궁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보고..


둘 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근사한 데이트를 한 건 아니였지만

우린 항상 행복했어요.

서로에게 미안해했고고마워했습니다.

 



가끔 제가 질할을 피울 때에도 그 사람은

저 괴물조차도 내 여자친구니까..’

라는 마음으로 날 이해해주었고,

내가 도와줘야지!’

라는 기특하고 고마운 말을 해주던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을 생각하니 또 다시 마음이 참 아파요.

왜 우리는 하필이면 그때 만났던 걸까요.

 

둘 중 한 명이라도 편안한 상황이었다면,

그래서 한 명이라도 서로를 더 보듬어줄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는 한 집에서 아이 한둘쯤은 낳아

오손도손 살 수 있었을 것도 같은데..

 

오빠는 법학과를 다녔고,

사법고시를 막 준비하려던 때였어요.

저는 4학년이 되면

국가고시를 공부해야 하는 전공이었구요.

 

3학년 말에 사귀게 되어 4학년이 되었고..

이후 우리의 데이트는 

오빠의 공부 시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

대부분 xx대학교의 도서관에서 이루어졌어요.

또는 고시촌..

 

저는 이성교제하느라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함께 망해가는 커플을 예전부터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의 고시공부오빠의 고시공부,

그 해에는 각자 열심히 하며

그럭저럭 비슷한 처지로 괜찮았더랬습니다.

 

공부하는 오빠 옆에서 토익책펴놓고

침 흘리며 자다 깨기도 하고

학생회관 샌드위치 사달라고 찡찡거리기도 하고

고시식당에서 파는 식권밥도 같이 먹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 노력해서 나중에 꼭 결혼하자.”

이런 얘기도 하고 그랬더랬어요..

 

그러는 동안 저는 졸업을 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오빠는 여전히 고시공부를 하니 

상황이 매우 나빠졌어요.

 

저는.. 남들 보기에는 

크고 좋은 곳에 취직을 했다지만

몸이 너무나도 힘든 곳이였어요.


새벽 6에 집을나서 출근해야 했고,

퇴근 후에도 다른 시키신 일들을 하느라

새벽녘에 잠들기 일쑤.

회식을 가면 주시는 술은 바로바로 받아먹어야 했죠.

 

저는 저대로 첫 직장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오빠는 공부하는 사람이니 오빠에게 기댈 수는 없었어요.

오빠에게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수다를 떠는 것조차도

너무 미안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반년이 더 흐르고,

오빠는 시험을 앞둔 초조함.

저는 첫직장의 고달픔으로 피차 많이 힘들어졌지요.

 

그 무렵..

오빠가 저에게 손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우리 애기랑 나중에 행복하게 살려면

오빠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그러니까 우리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자.

우리 이제 한 달에 한 번만 데이트하자.”

 

이 편지를 읽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데이트 자주 못하게 된 데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정말 가슴아프고 오빠가 불쌍하고

미안하고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그 사람.

삭발까지 하고 공부하는

그 사람의 밋밋한 머리를 보면서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음이 아리던지요.

 




그런데 또 저는 저대로 제 상황이 너무 힘들고...

 

그때 저는 스트레스와 잦은 커피와 

궤양에 염증에 몸이 고장났고,

오빠라도 만나면 좀 위로가 될 것 같았지만,

그럴 형편도 못 되니 속도 좀 상했었던가봐요. 

 

오빠는 그때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이 들었었어요. 

제가 고시촌에 한 번 가면 마트에서 오빠 장을 봐주고,

오빠한테 용돈도 주고 오고 그랬었거든요. 

 

한번은 저한테 5천원만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 말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런데도 그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사람 마음은 어떠 했을런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저도 인턴으로 일하던 때라

돈을 거의 벌지 못하던 때였으니,

둘 중 한 명이라도 편했다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다면...

하는 바램이 참 간절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와중에,

저희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것을 계기로 다투었고,

저는 그때 오빠의 1차 시험이 끝나면

헤어져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그 다짐대로 1차 시험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빠도 절 잡지 않았어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헤어졌는지는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구요..

 

하지만...

그땐 그렇게 힘들어서 그 사람을 포기해버렸지만,


한 달이 지나든..

1년이 지나든..

저는 그 사람을 잊지 못했어요.

 

가사도 외우지 못해 노랫말 프린트한 걸 손에 들고

민망하니까 저쪽 쳐다보고 있으라고 하더니

개천가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주며

노래 가사에 맞추어

제 손에 커플링 끼워주던 그 모습..


도무지 그가 잊혀지지 않아요.

 


 


헤어지고 2~3년이 지난 후..

그 사람에게 보냈던 저의 쪽지에

답이 한번 온 적이 있었어요.

 

잘 지냈니?

내가 그때 널 잡지 못한 건,

너에게 내가 해줄 게 없었기 때문이야..

널 힘들게 할까봐 널 잡지 못했던 거야.

그리고 나.. 공부는 그만뒀어..

행복하게 잘 살아..”

 

건너건너 소식을 들으니...

그 사람도 죽을만큼 힘들어했다고 하더라구요.


그 사람에게 더 고마운 건요.

그 쪽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서른이 넘은 지금.

많은 사람을 소개받고 만나고 사귀었으면서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사람만한 사람이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을 아프게 해서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만나지 못하나봐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만큼

참되고 괜찮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거죠..



그 사람과 내가 

2년만 더 늦게 만났더라면..

아니..

딱 그 해 겨울만 잘 넘겼더라면..

(저는 그 해 겨울이 지나고 이직을 해서 자리를 잡았거든요.)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서로를 바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직 혼자라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할까..

 


덧붙여...

혹시 지금, 힘든 상황때문에

사랑을 놓아버릴까

고민하는 형제자매님들이 계시다면..


그 고단함은 곧 지나갈 테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젠.. 상황은 되는데..

그 사람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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