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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사랑이 마르다

2013.07.29 17:26


안녕하세요 언니.. 지금 제가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된 이유는.. 글쎄요.. 이제는 사연을 올려주셔도안 올려주셔도 상관없는 이야기가 됐지만 그냥 덤덤하게 제 생각을 글로 적어보고 싶었다고 할게요.

 

전 결국 두 달 전쯤.

10여 년을 만나왔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물론 오랜 시간을 만나 온 만큼

다투다가 홧김에 헤어진 적이 

십여 년의 세월 중에 서너 번쯤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루 종일 그의 연락을 기다렸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라?’ 하며 조바심을 냈었더랬지요. 

 

뭐 서로 그랬었던 것 같아요.

따라서 결국 한두 달도 못 견디고 다시 만나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로 아무렇지 않아요.

그래요..

이게 제일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후련하고 혼자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아주 조금 우울한 점이 있다면,

헤어져서 우울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덤덤한 제 모습 때문이겠지요.


내가 힘들게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 었던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내가 원래 이렇게 혼자였던 사람이었나?

싶은 신기함.


그렇게 두렵고 힘들었던 이별이 막상 이렇게 아무렇지 않다니..

싶은 약간의 놀라움.

 

설마 연락 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집 앞으로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나랑 관련된 의미심장한 글을 적진 않겠지?’

 

이런 기대와 걱정조차도 모두 스톱.


하루에도 몇십 번씩 드나들던 그 사람의 각종 SNS도 

헤어진 그날 이후론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저의 첫사랑입니다.

단 한 번도 다른 남자에게 눈길조차 준 적 없던 저는

어쩌다 이렇게도 냉정하게 변했을까요?

 

나도 속물이었나란 생각도 가끔 합니다.

 

10년을 만나는 동안

어쩌면 괜찮다괜찮다.”

스스로 세뇌를 시켰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속에 계속 앙금같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그 사람의 집안그 집안 구성원들의 성격,

그의 경제력 문제사고방식을 보며,


노력한다고 해보았지만 결국 

감내와 각오 다지기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저는

무기력함과 동시에 천천히 마음을 정리나 봅니다. 

 

남친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삼촌들이 명절 때 산소에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가 새치기를 했고

어쨌든 좀 경쟁구도(?)가 붙었는데,

결국 그 차를 붙잡아 세웠고,

끌어내려 쌍욕하며 싸웠다...

는 얘기를.


삼촌들이 어릴 땐 동네를 주름잡았다를 곁들여서.

 

그런 얘기 들으면서 전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 사람의 집안을 무시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그 모양으로 살지..'

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저의 박약한 의지로 조절되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네 것은 네 것내 것은 내 것인 개인주의적인 저.

그리고 뭐든지 가족가족가족...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심한 남친.

저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였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또

이런 제 모습을 보며 더 오기가 생겨

가족적인 걸 강요했습니다.

 

결혼도 안 한 저희 사이인데,

함께 여행을 가게 되면 그 사람의 어머니께 연락을 해서

여행 잘 갔다 오겠다 라고 해주길 원했고,

그의 어머니도 제가 그래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어요.

전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요.


뻔하고 비슷비슷한 시나리오의 반복이였습니다.

 

사실 헤어지기 한두 달 전만 해도

저희는 내년 안에는 결혼을 하기로

양가의 암묵적인 합의 정도는 있던 사이였습니다..

상견례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요.

 

남자친구의 집,

그리고 남자친구의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정말 방 한 칸 전세도 구하기 힘들었기에

저희 집에서 큰 부담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좋다남녀 평등 이룩해보자

반반씩이라도 하는 정도가 저의 바람이었습니다.

 

몇 달 전..

그 사람은 대기업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입사의 문턱에서 떨어지고는

꽤 오랜 시간을 상처받아 하고 방황했었어요.

 

당사자 많이 힘들었을 것 알아요.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저도 그 못지 않게 답답했습니다.

 

"나는 혼자 사회생활하며

너의 취업 뒷바라지까지 

물과 심을 다해 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상심으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최종면접 한번 갔으니,

서류에 부족함 없고, 1차 면접이 뭔지도 감 잡았으니

조금만 더 바짝 하면 좋지 않겠나?”

라는 이야기에,

남자친구는 아마도 야속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마 남자친구의 측근들은

제가 남자친구의 (이번대기업 취업실패를 이유로

헤어지자 한 걸로 이야기들을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헤어짐을 결심하게 된 이유

단순히 돈 문제(지금 가진 돈이 없어서지금 취업을 못해서)가 아니였어요.

 

제가 끝까지 참지 못했던 것은

그 사람의 처지에 맞지 않는 느긋함.

게으름이라고 쓰고 싶은 그것.. 이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께서 살아 생전에

내키면 일하고 귀찮으면 노셨던 분이시라,

집안이 너무 힘들었다 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를 통해 많이 듣던 이야기와 오버랩되는

그의 모습은 저에게 답답함을 넘어선 두려움이었어요.

 

취업이란 것이 어려운 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준비를 해도 모자랄 형편이건만

밤새 게임 하다 대낮에 눈뜨고 눈 뜨자마자 컴퓨터..

인터넷을 누비며 오후까지 노닥노닥.

오후엔 구인공고 확인하고 별것이 없으면 또 다시 게임.

 

머리로는 알 것도 같습니다.

그도 많이 힘들었겠지요.


생각처럼 취업은 쉽지 않고,

속은 타고좀 잊고 싶고

그래서 게임에 손이 가고.

일단 켜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지만 저에겐 인내가 부족했나 봅니다.  

함께 사는 것을 상상해보았을 때

힘든 일이 닥치면 힘든 일도 내 차지,

힘든 일로 마음이(괴로운 그를 뒷바라지하는 것도

내 차지가 될 것이란 불길한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얘기하던 그의 (가장 노릇을 팽겨치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락하는 그의 뒷모습에

저의 사랑은 말라갔던 것 같아요.

 

정말 진심으로 

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던 남자였지만.

10년을 만나도 눈빛에서 진심이 묻어 나오는.

날 여자로 만들어준 남자였지만.

미래를 함께 하기엔 제가 너무 불안했습니다..

 

돈 많이 준다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해서 

초봉이 사천 오천을 넘나든다 해도

(반반이라도 부담하여결혼하게 되면

(결국 그가 가져 온 절반은 대출일테니)

빚만 갚기도 빠듯할 텐데,

그 사람은 본인의 집안을 책임지고자 했고,

홀 어머니 밑에 자상한 장남은

아들 이상남편 대이더라구요.

 

저는 훌륭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라,

반복되는 그의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내가 희생하는 게 더 크다.’

라는 생각이 내 안에서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머니까지 모셔야 해?

(경제적 봉양 포함내가 왜?”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 내가 너무 아깝다..’

라는 지경까지 와 버렸고,

 

그러다 보니 덤덤하게 이별을 얘기하게 된 것이죠.

 

나중에 어머니가 더 나이 드시고

혼자 생활하기 불편해 지시면

그땐 자식된 도리로 모시겠다.”

 

신혼만 좀 즐기고

그 뒤로 바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

신혼 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싶다.”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특별한 줄 알았던 제 첫사랑

그저 그런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네가 나의 외적인 걸(조건보지 않아서

내가 가난하든어떤 사람이든 간에

네가 평생 내 옆에 있어 줄거라 믿었다.

그런 네 모습에 감동을 받았었다.”

 

서로 너무 큰 믿음을 가진 게 잘못이었을까요.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우리 사랑 때문에

그는 앞으로 나아갈 이유를 잃고,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된 것일까요?

굳건했던 신뢰가 이 사람의 발전을 발목 잡았던 것일까요?

같은 실수를 두번하기 싫은 나는 이제

어떤 마음으로 다음 사람을 맞아야 할까요..

 

그토록 사랑했던 그에게서 이런저런 모습을 보며

식어가는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할 수 없어

이별을 고했던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이야기하는,

또한 나도 한때 입에 담았던,

 

네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난 너를 사랑해.”

는 어쩌면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에게 그의 부재 그 자체는 편하고 행복한데,

다만.. '내가 이래도 되나..?' 의 마음은..


.. 잦아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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