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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챕스틱마저도 용서했었지

2014.08.6 15:00
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사연입니다. 2011년 ‘밥셔틀’이라는 꼬꼬마 사연이 채택된 바 있습니다. 이번 사연의 연애가 지속된 기간은 채 1년이 안 되지만, 제가 겪은 멘붕지수는 ‘밥셔틀’의 10배 정도 되기에 적어보려 합니다.

 

 

그 남자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여름날 클럽에서였습니다.

 

당시 저에게 클럽은 조금 어색했던 장소이기에

테이블에 앉아 소심하게 어깨를 들썩였죠.

 

그때 테이블에 한 남자가 앉았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조금 즐기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그는 저에게 술을 권하더군요.

 

이렇게 한 잔 받고나니

제 옆으로 옮겨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워낙 시끄러운 공간이다 보니

밀착된 상태로 서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리고 저희는 번호를 주고받았고

저를 더 알아가고 싶으니

내일 맑은 정신에 만나는 건 어떠냐하더군요.

 

 

 

! 저는 여기서 흠칫했어요.

클럽이란 곳은 서로 부비하다가 술에 헤롱대며

눈이 맞아 원나잇을 일삼는 공간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내일 맨정신에 보자?

이것은 절 유혹하기에 완벽한 멘트였지요.

내일 봐야 하니 오늘은 일찍 들어가보라더군요.

피곤했던 터라 집으로 돌아왔습죠.

 

다음 날.

저는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 꽃단장을 했어요.

동네 근처로 데리러 왔다는 소리에

그가 말한 곳으로 가보니..

 

와우!

길에서만 보아왔던 B사의 스포츠카가 보이네요.

내려서 문까지 열어주던 그는

예약해 놓은 곳이 있다며 그리로 가더군요.

 

맛좋은 일식을 먹으며 좀 더 대화를 이어갑니다.

식사를 마치고 칵테일 한 잔 하지 않겠냐길래

오케이.

 

그리고 또 고민 않고 차를 몰고 어딘가로 갑니다.

들어가는 곳이 호텔입구..? 뭐지?

긴장하고 내렸는데 호텔 내 칵테일 바로 데려갔어요.

 

바텐더와 매니저, 서빙하는 웨이트리스까지

그를 다 알아보고 인사를 하더군요.

또 한 번 놀랍니다.

 

그곳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손님도 거의 없어서

마치 그 공간을 통째로 빌린 듯한 느낌을 받으며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지인의 파티가 있다며 같이 가주겠냐더라구요.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어 보여 따라갔는데,

그 파티는 다른 호텔에서 열린 거였어요.

처음 가보는 호텔 파티에 저는 내내 멍때리다 왔네요.

 

그리고 아주 곱게 집에 데려다주고 그는 돌아갔어요.

놀라움이 가득한 첫 데이트였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호화로운 데이트 끝에

우리는 연애를 시작합니다.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절 공주처럼 대해줬고요, 매일같이 절 보러왔어요.

 

 

아참, 이 남자는 미국 시민권이 있는 남자였고

한국말을 잘 못해서 영어로 대화를 많이 했었어요.

한국남자에게 들으면 다소 오글거릴 멘트들을

영어로 들으니 마치 미드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콩닥했었지요.

 

이 남자, 하고 다니는 모든 게 다 명품이었어요.

구두도 벨트도 타이도 시계도 다 명품명품.

 

솔직히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좋았어요.

나도 이런 남자를 만나게 되는구나, 하구요.

 

얼마쯤 지나서 저는 그의 집에 잠깐 들렀어요.

그 집은 또 한 번 제게 놀라움을 주지요.

한강이 보이는 뷰와 우리 집 화장실만 한 현관,

우리 집 2배쯤 되는 TV,

모든 방에 엄청난 크기와 높이의 침대들,

이방서 저방으로 소리쳐도 안 들릴

그런 어마어마한 집 크기까지.

 

기가 한껏 죽어서 나왔지요.

그 집을 연애기간 내내 자주 드나들었어요.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고

어머님과 단둘이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그전에는 남자친구 부모님을 만나 뵌 경험도 없어서

저에겐 모든 게 신기했고

이 남자와 이렇게 결혼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가지 좀 놀라웠던 건,

그의 어머니가 새어머니였는데

그와 10살도 차이가 안 난다는 거였어요.

 

 

이후에 친어머니도 뵙고,

그의 가족들과 여러 차례 만나며 가까워졌어요.

아무튼 제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아 보였지요.

 

연애기간 내내 참 편하게 잘 지냈어요.

회원제로 운영되는 호텔을 거의 매일 드나들었어요.

숙박을 한 게 아니라,

골프 연습하는 걸 보기도 하고 브런치를 먹기도 했어요.

 

한여름인데도 회원들만 받기 때문에

한가로운 호텔 수영장에도 많이 갔었어요.

호텔을 숙박 목적으로만 알고 있던

저에겐 놀라운 경험이었죠.

 

이 남자는 정말 여자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한 가지 빼고요. 그것.

그의 것과 비교할 만한 물건에는

챕스틱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정말 저에게 잘했어요.

 

말이나 행동이나.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가 해주는 물질적인 것에 혹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받아보지 못한 대접을 받고 어딜 가나

그의 지인들이 제게 인사를 했고

인맥이 넓어서 웬만한 클럽에서는

룸이나 테이블을 잡아주었어요.

 

이런 생활을 지속하고 싶었고그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는 저에게 우리사이를 짧게 보는 게 아니라

길게 보는 거랬어요.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고 했어요.

 

저와 차이가 나는 형편 때문에

자존심 문제로 헤어질 뻔한 적도 있지만,

그가 잡아주어 다시 사귀기도 했지요.

 

그렇게 좋아서 지내다가

서로 익숙해지고 조금씩 변해갑니다.

저도 꾸미고 다니는 걸 좀 귀찮아하기도 하고

그도 날 데리러 오는 것 같은 건 안 하기 시작했어요.

 

서로 의심도 하고 가끔 큰소리도 내고,

데이트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집에서 밥해먹고 TV 보며 그렇게 지냈어요.

 

데이트의 설렘은 온데간데 없고

변해가는 그가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얘기하건대

저는 그 생활을 버리고 싶지 않아

그를 놓아야 할 시기를 놓쳤던 걸 인정합니다.

 

그리고 연애한 지 반년이 지나

진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는, 자기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은데

자길 왜 좋아하냐 묻는 등 이상했어요.

 

 

내가 뭐 더 알아야 하는 게 있냐고 했더니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많고 자긴 요즘 너무 힘들대요.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 아버지,

그렇게나 저에게 다정했던 그 아버지께서

절 반대하신대요.

이유를 또 물었지요. 왜 반대하시는지.

 

저는 고교, 대학시절을 외국에서 유학하며 보냈는데요

그걸 들은 아버님이,

제가 외국에서 어떻게 문란하게 지냈는지 알 수 없다

반대하셨대요.

 

아들이 미국인인데, 저로서는 좀 이해가 가지 않았고요.

두 번째로 저는 이혼가정의 자식인데,

이혼한 부모 밑에서 뭘 배웠겠느냐며 안 된다고 하셨대요.

발끈했지요.

 

우리 부모님은 제가 20살일 때 이혼하셨고,

그가 초등학생일 때 이혼해서

현재 자기 아들과 10살도 차이나지 않는

어머님과 사는 아버님이 그런 말을 하시는 건

용납이 안됐어요.

 

심지어 그 어머님은 4번째 부인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아 이 남자가 날 떼어내려고

자기 아버지를 이용하는 건가 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미련하게도 헤어질 생각보다는

이 남자를 설득시킬 생각을 했어요.

좀 더 잘하고 변해보려 애썼어요.

 

 

저는 제 이러한 사정을

어렵게, 지인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저는 고민상담차 털어놓은 거였는데,

지인은 그가 미국인이란 것을 이용해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뭔가 더 있을 거라고 찜찜하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리하여 나온 결과는..

그가 이혼남이라네요.

 

그것도 19살 때부터 10년 가까이를

혼인관계를 지속했다네요.

그런데요,

그 여자와는 식도 올리지 않고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은 채였대요.

 

나중에야 이혼을 하려는데

그 여자가 혼인신고를 안 해서

위자료를 못 받게 된 것을 알고

이 남자를 고소했대요.

 

아마 그래서 다 털리고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알고도 저는

관계를 끝맺을 것인지, 지속할 것인지

고민을 했습니다. 호화로운 생활에 취한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스케일이 남다르신 이 남자의 친구분께서

본인의 생일파티를 남자들끼리

필리핀으로 놀러가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했어요.

 

돈이 많은 사람들이니 이 정도 여행경비야

아무것도 아니었겠지요.

 

제가 어디론가 국내로 여행을 가자 했을 땐

회사 핑계로 안 가던 사람이 필리핀은 가데요.

23일이라지만 저하고는 12일 여행도

안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말린다고 안 가는 게 아닐 테니 보냈어요.

 

그런데 3일 내내 연락두절.

도착하는 날 전화를 해보니,

어라? 아직 필리핀이라네요?

3일을 더 있으시겠다네요?

 

이 이야기를 들은 아는 언니는,

넌 어쩌자고 거길 보냈냐,

남자들끼리 필리핀을 가겠다는 건

대놓고 한 목적만 가지고 가는 거라며 등짝을 갈겼어요.

 

정말 몰랐어요.

56일의 멋진 팟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그에게 물었지요.

 

필리핀 여자들은 니 물건에도 즐거워했나봐?

그리고 그간 제가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본인의 과거에 대해 따져물으니

다 인정합니다. 이혼남이 맞다.

 

근데 그 와중에 혼인기간을 속이시네요^^

에라이 XXX^^

 

 

그렇게 10개월의 연애를 끝마치고

이별에 연연하지 않고.. 전 잘 지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이미 정리를 해오고 있었던 터라

잊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안 걸렸어요.

 

그리고 인정하게 됐지요.

교제기간 동안에는 그를 사랑했다 생각했는데,

전 이 남자가 경험하게 해주는

호화로운 생활을 사랑했었다는 걸.

 

이 호화생활을 지킬 수 있었던들

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이 남자의 이혼 사실을 몰랐다 한들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 남자는 저와 헤어지고 2주 만에

10살 어린 여자를 만나 잘 지내더군요.

 

저는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를 보고

이때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갖은 노력과 수모를 당하며 얻어낸

청담동 생활이 즐겁게 보이지만은 않더군요.

 

제가 그런 삶을 꿈꾸고 노력해서

이 남자를 얻었다가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오히려 더 억울하고 분했겠지요?

 

지금까지,

한때 한남동 앨리스를 꿈꿨었던 처자의 사연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덧,

이 남자가 한국에 있기에

혹시 자매님들  밟으실까 몇 가지 정보를 드립니다

 

- 한국말이 어눌해요. (ex. 전역 먹었어? / 난 박 회잔님 만나러 가는 길이야.)
- 한강이 잘 보이는 한남동에 삽니다.
- B사의 차를 아직도 타는지는 모르겠어요.
- B호텔의 회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챕스틱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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