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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정말 울고 싶은 건 나야

2014.08.15 11:41

안녕하세요.

현재 꽤나 널널한 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탓에

근래 자주 이 곳에 출몰(?)하고 있는 30대 중반남자입니다.

 

 

저에게 처음 제대로 된 연애였음과 동시에,

아직까지도 가장 긴 연애 기간을 기록하고 있는

'그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최강 모태솔로 급이었던 저에게

연애를 알려주곤 다시금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그 아이'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음...지현이라고 부를게요.

 

사실 저는 첫인상에 여성분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겉모습은 아닙니다.

거기에 여성 분들 앞에서는

자신감까지 급 하락하는 성격 탓에

지현이를 만나기 전까진

대학 신입생 시절에 사귄

약 한 달 여의 연애를 제외하곤

연애 전과(?)가 전무한 모쏠이었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강조하셨던

조심류 쓰리콤보

1) 술 2) 도박 3) 여자

중에서 2번과 3번은 나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셈이었죠.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녀를 만나기 전 제 모습은

대체로 이러했어요.

 

그러다가 30대가 되어

저보다 무려! 6살이나 어린 그녀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녀를 만난 곳이

압구정의 한 나이트였어요.

어릴 때, 잠시 헛바람이 들어서...

잘나가는 대학 선배, 친구들에 끌려

나이트를 많이 다니긴 했으나,

그 흔한 여자 전화번호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었지요.

전 여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움츠러드는 남자였거든요.

 

그녀를 처음 마주쳤을 때,

정말 오장육부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용기를 끄집어내어

 

"저...저기...혹시 전화번호 좀..."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었죠.

다행히 서로 번호를 교환하는 데 성공!

그녀는 자신의 번호를

쿨하게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다음 날 먼저 연락을 하더군요.

제가 연락을 먼저 했어도

'안 받을 수도 있겠다'싶던 찰나에요.

모태솔로남이었던 저에겐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때의

저에겐 '기적'과도 같았어요.

 

 

아무튼 지현이와 전 그렇게 만났습니다.

사는 곳도 참 가까웠어요.

몇 번 정도 만났는지...

급격히 가까워진 우리 둘은

저의 고백으로 사귀게 되었습니다.

 

비록 '나이트'라는 장소에서

만나긴 했으나 지현이나 저나

서로에게 충실히

믿음을 주려 노력했습니다.

(최소한 제가 느끼기엔 그랬지요)

특히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조그마한 문제조차도 없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고 몇 달 후, 

(부끄럽지만) 저는

서른을 넘어선 나이에야

드디어 첫경험도 하게 됐습니다.

그녀와 만나는 약 반 년 동안은

정말 행복했던 것 같네요.

 

학업에 전혀 생각이 없던 그녀였지만

저는 지현이를 지속적으로 설득해

복학을 시켰습니다.

그건 당시 지현이를 위해서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제 순결(?)을 지켜왔던 저로서는

제 인생 첫 여자와 결혼

꿈꾸기도 했었기 때문이죠.

 

부족함 없이 자라온 지현이가 

가끔 철없이 느껴질 적이 있기는 했지만

어린 나이를 생각할 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현이도 저처럼 

'우리 둘의 미래'를 꿈꿨나 봅니다.

사귀게 된 지 9개월 정도에 접어들 무렵,

지현이는 제가 그녀 집안의 어른들을

만나 뵙기를 원했습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녀가 원하는대로 했어요.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뵙고

식사자리를 가졌습니다.

여자들에게는 어떤 남자였을지 몰라도

제가 어른들께는 나름 싹싹한터라

지현이 부모님께선 저를 꽤

마음에 들어하신 눈치였습니다.

 

지현이는 이어서 

저희 부모님까지 바로 뵙기를 원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혼기가 가득 찬 당신의 아들이 

나이도 한참 어린데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

아직 대학 졸업도 못하고,

게다가 취직 전망이 밝지도 않은

전공을 가진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것이

꽤나 걱정스럽다는 눈치셨어요.

 

아, 물론 그런 반응을 여자친구에게

전하지는 않았죠.

당시에 전 여자친구의 현재 상황이

비록 긍정적인 건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니,

실제 결혼할 때 쯤 되면

상황이 괜찮아져 있을 거라 여겼어요.

그리고 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생각해서

지현이와의 만남을 계속했습니다.

 

그즈음 서로에게 권태기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에게는 '오늘은 피곤하니

집에서 쉬겠다'는 핑계를 대곤,

몰래 운동을 가기도 했고...

싱글일 적 혼자 즐겼던 취미활동

다시 하나둘씩 늘리기 시작했죠.

여자친구도 복학을 하고는

예전만큼 심심해하며

저에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본인 학교 생활에 충실하더군요.

 

그러던 중 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지현이가 어느 날 갑작스레

'중대한 일'이라며, 

잠시 보자고 하더군요.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저를 충분히 당황케 했습니다.

마법을 안하기에

임신 테스트기를 했는데,

두 줄이 나왔답니다...

그래서 혼자 산부인과도 갔다 왔는데,

의사가 '임신이 맞다'고 나왔대요.

 

그러면서 지현이는

당장 부모님을 뵈러 가길 원했어요.

 

후...

저도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했습니다만,

우선 저희 집으로 가서

혼자 계신 어머니께 사실대로 말씀 드렸습니다.

가만히 아무 말씀없이 앉아계시던 어머니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시더군요.

 

저는 그 길로 바로

지현이 집으로 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책임을 지고싶다'고 했습니다.

그녀 부모님께서는 놀라신 듯 보였지만,

이내 받아들이셨죠.

저희 집에서는 그날 밤 난리가 났고요.

 

저는 부모님께서 끝내 반대하시더라도

'책임은 반드시 지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집에서 쫒겨나더라도

우선 처가살이로라도 시작할 생각도 했습니다.

건강한 몸 하나 믿고, 

가족 생계는 책임질 자신 있었고요.

 

 

며칠 동안 난리가 계속되던 중,

저는 계속 염려스러워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우선 병원에 다시 가서

정확한 진단을 함께 받아보고자 했습니다.

지현이에게 조심스레 제안했죠.

 

지현이는 막무가내로 

'싫다, 싫다' 했습니다.

저도 물러서지 않고,

'왜그러냐, 나도 아이의 아빠로

병원가서 정확히 듣고 싶다'등등

게속 설득했습니다.

 

 

그러더니 병원 가기 싫다던

여자친구가 충격적인 말을 하더군요.

 

 

"나 사실 산부인과 안갔었어."

 

"으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병원갔더니 의사가 임신이라고 했다며?"

 

저는 차분히 좀 더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지현이는 사실 테스트기 두 줄도

확실한 게 아니었답니다.

처음엔 한 줄이었다가

나중에 보니 두 줄이 되었나다...뭐라나...

 

아무튼 엉엉 울면서 얘기하는

여자친구를 조용조용 다독여서

저도 난처음 산부인과에 가게 됐네요.

 

산부인과에 가서는 더 멘붕이었습니다.

'진료를 받지 않겠다'며

병원 로비에서 어찌나 울어대는지

통곡도 그런 통곡이 없을 겁니다.

정말 주위에서 보면 임신한 여자친구

억지로 낙태시키려고 데리고 온

못되X먹은 남자 꼴이었습니다.

 

게다가 산부인과에서는

당일에 임신 여부 결과를

알려주지 않더군요?

(이거 원래 이런 건가요...)

 

아무튼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지현이는 딸이 임신이라고 알고 계시던

자신의 엄마에게 얘기를 못하겠다!하여

제가 어머님께도 직접 전화를 드려 

'여차저차해서 산부인과에 갔고,

결과를 기다려야겠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저희 부모님께는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임신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도

생각해야했으니까요.

또 전쟁을 치르긴 싫었거든요.

 

그 상황에서 지현이는

저에게 정이 떨어질만큼의 

철없는 소리를 마구 내뱉더라구요.

 

"진짜 임신이 아니더라도,

지금 바로 아기 만들면

문제 해결되는 거 아냐?"

 

"......."

 

 

우리 사이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도 파악 못한 채, 

말도 안되는 해결책을 내뱉는

지현이를 보며 전 정말 세상에서

증발해버리고 싶었습니다.

울고 싶었습니다.

 

 

피가 타들어가는 일주일 정도가 흐른 후,

산부인과에서 결과를 받았습니다.

95% 정도의 확률로 임신이 아니라더군요.

정확한 진단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원래 '100% 임신이 아니다'라고

진단 내리진 않는다네요.

산부인과에서 그런식으로

얘기해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것도 원래 그런가요...)

 

 

아무튼 산부인과로부터

임신이 아니라는 내용을 듣고 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에게 배신감도 들었어요.

결론적으로 저에게나 그녀에게나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거짓말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저는 이런 생각을 견디다 못해

여자친구에게는 결별을 얘기했고,

장모님이 되실 수도 있었던

어머님께도 따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만나는 것은

서로에게 악영향만 끼칠 듯 하다"고...

제 생각을 말씀드렸죠.

 

저희 부모님께도 자초지종은

일일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일단 헤어졌다고는 알려드렸습니다.

제가 임신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고,

헤어졌는지에 대해 저희 부모님이

어떤 추측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

 

 

헤어진 후, 2주정도 흐른 뒤에는

그녀에게서 '생리를 시작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여자친구는 설명했습니다.

"확실치 않은 두 줄에 겁을 먹었다.

배가 부른 채 결혼식장에 들어섰던

사촌 여동생의 영향으로

배가 나오기 전에 얼른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 급한 마음에

그런 거짓말을 저질렀던 거다."라고요.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제 인생을 두고 봤을 때,

그녀는 저의 많은 부분에 있어

'처음'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 때의 후유증(?)이랄까요,

트라우마같은 걸 안고있습니다.

뭐, 사내자식이 그정도 일 가지고

왜 그러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 도통 '여자'를 믿기가 힘이 드네요.

제게 첫사랑을 알려주고,

동시에 그보다 더 큰 상처를 준 채

떠난 그녀를 지금까지

잊지 못한 건 아닌데도 말이죠.

그만한 상처를 잊게 해 줄 만한

제 짝을 저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죠?

 

 

이만 이야기 마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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