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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짧] 나도 누군가 사랑해봤다

2014.08.21 11:25
 
 
안녕하세요. 이제 만 나이를 끌어와도 20대라고 우기기도 힘든, 서른의 자매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소닭 보듯, 밋밋한 감정 상태로 살아오던 중.. 최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끼게 되어.. 이를 공유하고자 사연을 보냅니다.

 

제 직업은 학원강사입니다.

업무 특성상 낮에 놀고 밤에만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인간관계는 사하라 사막마냥

건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20대 때는 집안 빚 갚는다고

주말까지 미친 듯이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 이제 정신을 차려보니 제 주변에는

학원에서 매일 싸움을 해대는 원장님 부부

 

제 어깨를 주무르거나 손에 뽀뽀를 해대는

호르몬 폭주 중인 아해들밖에 없더군요

(제가 이러지 말라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면

혹시 어린데 수치심 느낄까봐 혼도 못 내겠고..

뭔가 직장 내 성희롱 당하는 기분이긴 합니다)

 

성인 남자는 지나가는 행인 밖에 볼 데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서른을 맞이하니

 

이대로는 실버타운으로 직행이라는,

위기감이 급! 들었지요

 

그래서 친구들을 쥐어짜기 시작했습니다

어서 소개팅을 내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ㅠㅠ

 

그렇게 얻어낸 수많은 망개팅 끝에,

전 얼마 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180cm 큰 키지상렬을 닮으신 그분ㅋ

저보다 2살 위의 오빠인 데다가

사회생활 오래 한 것 같은 그의 여유로움에 빠져

본의 아니게 소개팅 당일에 진도를 까지 빼버렸습니다;

 

 

..

술이 만땅으로 취해서 그렇다는 변명은 해보지만

저도 좋아서 한 일이니 뭐..

더 이상 주절대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 지상렬 오빠전에 만났던 분의 주니어는

콘돔을 끼우면 바로 수줍어지시는 터라

콘돔을 끼우고도 관계가 가능

주니어의 존재만으로도!

그는 이미 합격점이었습니다.

 

보통 이러한 초고속 전개라면,

충분히 원나잇으로 헤어질 상대였지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남들처럼 부농부농 연애란 걸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닭살스러운 말도 해보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한 달여를 보냈습니다.

 

 

문제는 제가 "연기"를 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이 상황에서

제가 하는 이 모든 행동이

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무슨 3D 입체영화 안에 들어 와있는 기분이었죠

 

참고로,

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 합니다

 

누군가 보고 싶다거나,

사랑한다거나 사랑을 받았다거나 하는 감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집에 돈 한 푼 벌어다 준 적 없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아버지

 

남편만을 바라보고 사는..

남아선호 사상이 너무 강해서

여자는 더럽다고 생각하시는 어머니

 

군대 가기 전까진 설거지와 쓰레기통 비우기는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던 안하무인한 남동생...

 

제 가족을 사랑하지만..

늘 혼내는 어머니가 너무 무서워

제대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큰 사춘기 때문인지

전 그냥 그런 반쪽짜리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으면 진짜 나는 무너지겠구나

라는 걸

 

 

그래서 저는 그에게서 도망가야 하는 이유

찾기 시작했나 봅니다

 

멀리 아울렛까지 가서 생일 선물 사준 날에도

밥은 자기가 샀으니 커피는 네가 사라는 건지

계산할 때 뜸 들였던,

늘 칼같이 더치페이 하려는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차가 없어서 내가 항상 차로 데려다 줘야 하는데도

고맙다는 빈말하나 없으니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가족모임있다고 이틀 동안 전화 한 통 없는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지나고 생각해 보니 다른 연인처럼

대판 싸우고 대화로 풀면 될 일을

혼자 머릿속으로만 막장 드라마를 쓰고 있었습니다

 

애인과 갈등을 대화로 풀어본 적 따위..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렇게 속을 태우고 삭이던 어느 날,

저는 술에 취해 새벽 한시에

전화를 해서 헤어지자..

했어요.

 

그런데 그는 왜 그러냐는 말 한마디도 없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정말로 을 내주었습니다.

 

 

그 순간,

이런.. 강철멘탈 아저씨가 나를 떠났다

는 실감이 들자,

 

거짓말처럼 그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울고 싶은 그런 기분..

 

하루에도 전화기만 수십 번씩 보고

일을 하다가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이런 기분..

 

사랑한다는 그의 말에

나도 사랑한다고 대답해 줄 걸

이란 후회....

 

태어나 처음 느끼는,

누군가 보고 싶다

라는 감정에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상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들은 그깟 한 달 연애, 유난 떤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그 남자도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는 댓글이 올라올 것 같기도 하지만

전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좀 많이 꼬이고 이상하지만)

나도 누군가를 사랑해봤다고!!

 말입니다..

 

 

두서 없긴 하지만 글로 옮기고 나니 홀가분하고 좋네요

 

전 그냥.. 세상에게,

나도 쬐끔씩이긴 하지만

좀 더 제대로 된 여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전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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