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황망한연애담] 내가 밀렸다 (← 바로가기!) 사건의 제보자매입니다. 제 엉망진창이었던 글을 정말 잘 정리해서 올려주셨고, 덕분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시간을 쪼개어 자기 일처럼 공감해주시고 등짝 때려주시고 마음 아파해주신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정말로요!! 이에 감사를 표하고자(?) 제보가 올라온 지 약 반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제보드립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한 달 전쯤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황당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 제보의 내용 때문이 아닌
전혀 다른 이유로 제가 헤어짐을 고했네요ㅎㅎ
이런 걸 보면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헤어지고 나서 화병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요즘...
헤어질 때는
‘나는 제대로 연애를 해본 게 이번밖에 없으니,
결혼 전에 다른 남자들도 만나보고 싶다.
안 그러면 후회할 것 같다’는 이유로 헤어졌다
생각했었는데,
한 달 쯤 지나 제가 보냈던 사연을 다시 보니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참 잘 헤어졌다’ 싶어요ㅎㅎ
되게 재밌네요.
아, 그리고 ‘기념일에 대한 서운함’도 폭발했고요.
이게 지금 화병의 원인!
지금까지는 간략한 제 근황이었고요!
제가 이렇게 후기를 보내게 된 이유는
제보자매님들도 참고하실 만한 깨우침을
얻게 되어서입니다.
사실, 정말 솔직하게 욕먹을 각오하고 말해보자면,
제가 보낸 사연이 올라왔을 때 저는
구남친의 잘못을 지적해주시며 제 편을 들어주신
많은 자매님들의 댓글을 보며
많은 힘이 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깊은 마음속으로는
‘이 분들은 내 남자친구의 착한 면을 잘 몰라서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시는 걸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ㅠㅠ 진짜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네요.
특히 생각나는 사연으로
걸린 것을 보고
‘그 괴상한 놈들과 내 남자친구는 차원이 다른데ㅠㅠ’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놈이 그 놈입디다.
실제로 그 댓글들 보고도 몇 달간은
아주 화기애애하게 잘 지냈어요.
말 꺼내면 싸움이 되니까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 입장 바꿔 생각해봤을 때
만약 제가 이 사연과 이 댓글을
당시 남자친구한테 보여주고 그가
“이 분들은 내 착한 면을 잘 몰라서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시는 걸 거야.”
라고 반응했다면 저는
“이 한 가지면만 봐도 차고 넘치게 문제가 되니까
이렇게 말해주시는 거지.”
라고 반박할 것 같아요.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를
저는 미련하게도 합리화하며 외면해왔었네요.
혹시 제보형제자매님들 중
예전의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충분히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그리고 또, 사연을 다시 보면서
생각이 정리가 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사촌형 문제나, 기념일 문제 등등을
합리화하며 제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 사람과의 '사랑'이 아니라 '사이'였던 것 같아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100% 인정하기가
어렵고 마음이 아리네요...........
어떤 드라마에서였던가 나왔던 말이
“오래된 사랑을 지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다”
이런 게 있었는데..
정말 저에게는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제 상황과 꼭 들어맞는 이야기 같진 않지만..
저는 그 애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 헤어졌다기보다,
관계를 유지해나갈 의지를 잃은 것 같아요.
그동안 저를 붙잡고 있던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아닌
‘3년이나 만난 사이좋은 오래된 커플’
이라는 타이틀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요ㅎㅎ
누구나 인정하는 오래된 커플, 사이좋은,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칭찬이
저에겐 꽤나 큰 자부심과 자랑거리가 되었고
저는 그 자랑거리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왔던 거예요.
제보했던 것과 같은 문젯거리들은
다른 커플의 문제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라며,
도박이랑 술이랑 여자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니냐며,
오래 사귄 상대와 결혼하는 일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아주 멋진 일일 거라며 합리화를 했었네요..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으면
제 20대를 그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렇다고 한 사람을 오래 만났던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렇게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썼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건데,
뭐 그리 잘난 타이틀이라고
그렇게 방어하려 노력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깨우쳐 준 것은
제 친구가 했던,
“그러다 어영부영 결혼하는 것 아니냐”
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굉장히 로맨틱하게 생각하면서 꿈꿔왔는데도
저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진짜 다른 사람도 한 명도 못 만나보고
이 사람이랑 어영부영 결혼하려고 하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대로 결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혼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결혼도 안 할 거면 하루 빨리 헤어지자!
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에게는 청천벽력 같았을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하루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말을 나누다가 하루아침에 헤어져버렸는데
전혀 후회가 되지 않더라고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행복한지
고민이 될 정도로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해 본 결과,
위와 같이 제가 붙들고 있던 것은 그냥
‘그 사람과의 관계’였을 뿐이었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까지 도달하더군요.
그리고 ‘타이틀 지키기’라는 족쇄와
합리화의 프로세스를 벗어 던지고
관계의 바깥에서 ‘우리’를 다시 보기 시작하자
그동안 많이 참아왔던 제 마음이
불만사항을 하나둘씩 토해내더라고요... 끝도 없이ㅎㅎ
물론 저도 잘못한 점이 많았겠죠.
근데 그렇게 객관적으로 잘잘못을 따져서 뭐하겠어요.
그 사람이 10개 잘못했고 나도 10개를 잘못했으니까
참고 사귀자 이런 계산 할 거 없잖아요.
저는 아직 젊은데요!
아직은,
5개의 잘못을 해도
제 머리가 먼저 굴러가는 사람보다,
20개를 잘못하더라도
제 가슴이 먼저 뛰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나중에(많이 나중은 아니겠지만 ㅠㅠ) 결혼할 때가 되어
‘아 그 사람 스펙은 진짜 좋았는데ㅠㅠ’
하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후회를 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자라있을 테니까,
그것도 좋은 교훈이 아니겠어요??
글을 끝맺자면,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제가 지금 행복한 건 전부 자기 일처럼 생각해주시고
금 같은 조언 남겨주신 형제자매님들 덕분입니다.
결정적인 이별 이유가 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조언들을 통해
생각만 해오던 이별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합리화하며 부정했지만
한켠으로는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사족이 있는데요,
제가 그 전 제보글에 대한 댓글로
[남자친구가 변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는 글을 남겼었는데요.
사람은 역시 잘 변하지 않더라고요ㅎㅎ
직장을 관두고 시험을 준비하기에 궁핍해진
그 사람은 제 4번째 생일 선물로,
즉 3년 넘게 만난 여자친구 생일에
5천 원짜리 귀걸이를 사주었네요..
허허...........
그동안 절 괴롭혀왔던 기념일에 소홀한 문제와,
가족에게 1만 원도 달라고 하지 못 하는
가족사랑(a.k.a. 효자)이 합쳐져
정말 빛을 발하지 않나요???
받을 때는 고맙게 받았는데 헤어지고 나서
그 가격을 알게 되어 충격에 휩싸여
친구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네요
헤어지기 전에 알아서
개진상을 부리지 못한 게 한입니다.
진짜 이건 창피해서
친구들한테 말도 못하는 건데 ㅎㅎㅎ
제보하느라 기억을 떠올렸더니
자꾸 헛웃음이 나오네요.
그럼 5천 원짜리 여자는 이만 물러갑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