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친]구들은 [밥]벌이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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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친밥] 종합선물세트

2014.10.17 13:34

 

안녕하세요. 전 서른 중반이고 이제 다른 일을 자유롭게 하는 프리랜서예요. 지금은 모든 걸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길 편안한 여유가 생겼지만 참 힘들었던 첫 직장이 생각나네요.

 

전 온실 속 화초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두 번째 옮겼을 때까지도 부모님의 그늘에 자라 참 바보 같았었죠. 얼마나 어리바리했냐면, 입학상담을 받을 때 단어도 생소한 기계 관련 학과를 디자인과라고 속이는 남자 선배들 덕(;)에 전 가려던 디자인과 대신 기계 관련 학과를 가게 됐습니다.(학과에 여자가 없어 그렇게 꾀었던 건지 몰랐었어요..)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는 제 첫사랑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회사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전공 관련이기도 했고, 그와 결혼하면 같이 일하고 돕겠단 생각에요.. 이 회사는 규모가 컸지만 사장님께서 생각이 트인 분으로 학점도 안 보고 학벌도 안 보고 개인의 재능만 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사시험이 다른 회사와 달리 학과 공부가 아니라 부품을 보여주고 그걸 그리는 것이었어요. 디자인과를 가려고 했던 저는 그림을 웬만큼 잘 그렸고 해서.. 입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알아보니 제가 있는 기반기술부엔 전체 100명 중 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그 외의 여자라고는 회사 공장 아주머니들과 위층의 사무직 여직원들정도. 이게 문제가 될지는 몰랐네요.

 

처음엔 조금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다가오는 남자 직원도 많았었지만.. 점점 시간이 가면서 왕따가 됐습니다. 접근하려다 안 되면 저에 대한 반감도 심해진 것 같고.... 심하게 혼날 때면 제가 맘이 약해서.. 눈물이 나오기에 팀장님께서 저한테는 조금 약하게 혼내시니까 동기들 사이에서 질투도 심해졌고.... 했습니다. 이건 제가 온실 속 화초였던 점이 문제를 키운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남녀 차별이었습니다. 원래 기계 쪽 일하는 동기들은 현장근무를 6개월 이상하고 사무실로 온다는데 면접 봤을 때부터 이사님께서는 “현장직 시키면 얘 관둘 거”라시며 처음부터 현장근무 생략하고 절 설계직으로 보냈었거든요..

 

그래서였겠죠.. 같은 날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는데도 동기들이 절 동기로 안 봐주는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꾀 부려서 현장근무를 안 한 게 아닌데 말이죠. 동기들은 자기들은 6개월 전부터 현장에서 미리 일했으니 선배란 생각을 갖는데 회사에선 같이 입사했다고 동기라고 하고..... 그 때문에 동기들 사이는 점점 벌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예쁘장한 여직원 하나 기술부에 두려고 현장직 생략하고 보낸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제 귀에 들어왔죠.

 

그리고 직장에 다녀보니 제가 배운 지식은 어린애가 한글 배우듯 당연한 지식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업무 내용이 학교 공부보다 너무 심오하기 때문에 신입직원이 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얘네들을 가르치느라 업무에 방해된다는 것..

 

그래서 팀장님이 공부부터 다시 시킨다고 늘 숙제를 내주곤 하셨는데, 이렇게 되면 대학교 공부의 몇 배 이상 수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다른 남자동기들은 서로 상의해서 해결하는데 제가 같이 하자고 말을 걸면 대꾸도 안 하며 무시했습니다. 그쪽에선 절 동기로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이 밖에 윗사람들의 핍박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일이 바빠 보여서 너무 미안한 마음에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까요?”하면 한 선배가 화를 내며 “너 학교에서 배운 게 어디까진데 지금 아는 게 얼마라고 감히 어디서 일을 도와준다고 해? 그 시간에 책이나 보고 공부나 해”해서 책 보고 공부하면 이 상황을 뻔히 아는 다른 선배가 와서 “넌 남들 바빠 죽겠는데 혼자 책이나 보고 싶냐?” 뺑뺑이 돌리는..

 

전 그래도 남친 생각하며 “남친네 아버님 일 나중에 도우려면 배워야 하니까..”하고 열심히 했어요. 그냥 잘 하고 싶어 주말에도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다른 회사지만 같은 분야에서 일했던 남친이나 대학동기들을 만나 업무를 익히려 노력했습니다.

 

휴.. 그래도 그때 받은 구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아직도 우리나라에 그렇게 일하는 직업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 여자지만 남자 군대 간 심정 이해해요. 제 직장이 군대 같았거든요.

 

 

아구.. 계속 힘든 상황들이 줄을 잇는데,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ㅠㅠ 암튼.. 또 힘든 문제는 앞서 기술 쪽에 여직원이 얼마 없다고 말씀드렸었죠. 가끔 가다 회계부 여직원들이 '여직원 회식'이라고 하며 여직원들을 소환하고는 했습니다. 근데 이러 때마다 저와 컴퓨터 기술자 여직원 분이 늘 야근해서 못 간다고 하면 저희를 개인적으로 불러 심하게 말을 해서 억지로 불러내는 게 참 곤란했었습니다.

 

회계부 여직원들은 5시면 퇴근해서 여직원 회식 한다는데 전 같은 동료들이 퇴근 못 하는 그 시간에 간다는 말 하는 것도 참 그렇고... 첨엔 여직원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무조건 가라고 한 팀장님도 이런 게 매달 반복되니 “넌 남들 일하는데 일찍 가고 싶냐”하시고..

 

회사 전체 여직원 회식이라는 명목인데 실제로 가보면 다 회계부 여직원이고 컴퓨터 기술 여직원하고 기반기술부에 혼자인 저만 다른 팀이었어요. 하지만 회계부 사람들은 모두를 같은 여직원으로 분류하고 회식 하면 누가 제일 먼저 왔나부터 따져서는 서열을 따졌습니다. 그리고는 서열이 높은 사람한테 아부하며 서로 명품 자랑하는 얘기만 하는데... 아마 저랑 컴퓨터 기술 쪽 여직원 둘만 스트레스 무척 받았을 거예요. 그 시간에 놀면 우린 다음날 일이 무척 쌓이니까.

 

 

그래도 잘 버텼는데 문제는 팀장님이 절 너무 예뻐하기 시작하면서 절정을 찍었습니다. “ㅇㅇ이 일 잘 한다”하시며 절 자랑으로 삼으시곤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팀장님이 노총각인 상황에서 절 꼬시다 그게 잘 안 되니까 비열하게 괴롭히더라구요. 팀원이 10명이면 저 혼자 여자였는데 노골적으로 룸싸롱 얘기나, 여자인 제가 들으면 성희롱인 얘길 회의 시간마다 했어요. 어떨 땐 “청소하기 싫다, 이래서 여자랑 결혼해야 해”라는 여성 비하적인 발언도 했었습니다.

 

“진짜 고소해야지”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어요. 하지만 10년이 지난 일이고 그때 실정은 제가 성희롱으로 상사 고소해봤자 저 혼자 회사 나가게 되거나 이 모든 일들이 제가 문란하니까 일어났겠지 하는 오해 받을 사회여서 꾹꾹 참다 퇴사했어요.

 

그리고 이젠 좋아하는 일을 해요.

 

지금 정도의 사회이고 제가 지금 정도의 강한 멘탈이 있었다면 싸우고 고소했을 텐데 늘 안타깝죠.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그 팀장을 생각하면 죽여도 시원찮을 만큼의 여자로서의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해요.

 

한 가지 긍적적인 건 그 후 어떤 회사를 가서도, 어떤 힘든 일을 시켜도, 어떤 힘든 상황에 닥쳐도 별로 상처받지도 않는다는 거요. 그 점은 참 고맙게 생각해요. 아직도.... 제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회사보다 심한 일은 없구나’라는 사실에 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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