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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남자가 아닌 어른으로

2014.10.23 10:57
안녕하세요. 외국에서 뒤늦은 공부 중인 27살 여성입니다. 저는 늘 제 판단으로 모든 걸 해결해왔고, 좋든 싫든 직접 책임을 지면서 살아와서 이런 제보글을 보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입장이 아닌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한 고민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전공하던 분야를 버리고
다른 분야의 일을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예, ‘재능 없는 예술가만큼 슬픈 일은 없다’
고 생각해서 상처받을까봐 도망친 게 맞아요.


전공을 버리고 선택했던 일은
그래도 곧잘 해내서 자신감도 붙었고,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으니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차에 접어드니
그냥 같은 일의 반복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출발선이 같았던 전공학과 친구들이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걸 보니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적당한 삶‘에 안주해서 사는 건 아닌가?’,
‘이렇게 핑계를 대고 도전조차 하지 않다가
나이 들어서 “나도 한때는....”하고
말만 하는 사람이 돼버리는 건 아닌가.’

이렇게 고민이 극에 달하자, 결단을 내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나라로
일단 어학연수를 떠난 겁니다
.


제가 일하던 분야의 유학을 생각하고 왔지만,
사실......... 아무런 답은 없었어요. (답답..)


그리고 도착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지금 이야기하려는....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아서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왠지 전부터 오래 알았던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날 또 만나게 돼서
그가 “무슨 공부를 하냐”고 묻기에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듣자마자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너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애가
예술 쪽 일을 하지 않고 왜 그런 일을 해?”


였네요..
(또르르....)


네, 그렇죠.
외국에 갓 당도한,
꿈 많은 여자애 꼬이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전 정말 그 한 마디가 필요했고, 간절했거든요..


그 말을 누군가 단 한 번만 해줬어도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모두가 저한테
“넌 네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라고만 물었지,


“넌 재능 있어”, “가능성 있으니까 노력해봐”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좌절하고 도망친 거였죠..

그때부터 저는 그 사람에게
엄마 따라다니는 아기오리마냥 마음을 열었어요
.


저보다 10살 넘게 나이가 많았던 그는 제게
아빠 같았고, 오빠 같았고
얘기도 잘 맞아서 소꿉친구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를 만났던 당시는
다른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하기 직전에
여행 중이던 기간이라 더 열심히 만났어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고,
만약 오래 만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연락을 끊기도 쉬울 것 같아서요.


생각해보면
그를 가까이 느끼고 기대고 싶고 했던 건
제 사정일 뿐인데
...
그 사람도 흔쾌히 거의 맨날 절 만나줬어요.


매일 손잡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얘기를 하더라구요.


“너희 부모님이 열몇 살 많은 남자 만난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
“너랑 아늑한 집에서 하루 종일 책 읽고
영화 얘기하며 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말들이요.
지금 보면 그 의미가 참.. 다 와닿는데,
그때는 이상한 오기가 있었어요.


제가 그를 좋아하는 게 너무 다 보이니까,
한참 어린애한테 떡밥 던지면서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그리고 그 사람이 절 좋아하지 않는다!
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늘 저한테
“남자친구를 사귀라”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말하냐고 물어보면
“만나봐야 내가 가장 괜찮은 놈인 거 알지.”
이런 장난스러운 대답을 했어요.


또 항상 저한테 “넌 날 좋아하냐?” 묻곤 했구요.


어떻게 보면 서로 솔직하지 못 했고
그래서 서로 감정을 알 수 없었던 거죠
.


그러다 얼마 후 제가 다른 도시로 왔고,
몇 달이 지나고 남자친구가 생겼어요.


그런데 그걸 알곤 그 사람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저는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당신이 왜 화를 내냐”며 같이 화를 냈습니다;


저희는 둘 다 고집이 세서
조금만 어긋나도 굉장히 치열하게 싸웠었는데..
싸움은 점점 커졌고, 그냥 그대로 연락이 끊어졌어요.


그리고 몇 달 후에 저는
다시 그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갈 일이 생겼습니다.


둘의 마지막이 어이없었기도 했고,
애틋한 기분도 들어서 “만날까”하고 연락을 했죠.


그는 아직 마음이 상해있었던 건지
좀 툴툴대는 말투긴 했는데 만나기로 했어요;


그리고 당일에 몇 시에 보냐고 연락하니까,
갑자기 “너 나 좋아하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무슨 소리냐, 우린 친구 아니었냐”하니까
“넌 그 기억들을 벌써 다 잊었어?”하더라구요.


순간 그 사람 만났었을 때
제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던 느낌이 확 살아나
욱!하게 됐고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거면 보지 말자
하고 또 싸우고 그대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제는 다 잊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1년쯤 지나 그 사람을 만났던 계절이 돌아오니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나더라구요
.


그제서야 그 사람이 했던 말들의 의미가
차츰 보이기 시작했고요
.


또 제가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마음을 들킬까봐 일부러 무관심하게 군 것,
그 사람이 늘 제게 주던 선물들, 애정표현들..


다 생각나니 너무 미안하고 고맙더라구요.


그리고 싸우건, 연락하지 않건
이상하게 그 사람하고 저는
왠지 연결되어있다는 확신 같은 게 있었어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사람 생각이 저한테 보이고
,
제 생각이 그 사람한테 보이고..


제가 듣고 싶었지만 평생,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골라서 해 주고,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 가정에서 혼자 자라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뭔지 몰랐는데,
그걸 그 사람한테서 배웠거든요.


그리고 늘 그 사람이 하던 말이
“내 목표는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거야.”
였어요.


그만큼..
그와의 기억은 아름답게, 완벽하게 기억돼 있기에
괜히 환상을 부수는 게 아닐까 겁이 나긴 했지만,
깨어진들 어떠랴, 한번 부딪혀보고 싶어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반갑게 답장이 왔고,
저희는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네가 너무 그리웠다]고 하더라구요.


바보 같은 전, 갑자기 겁이 나서
[사실 난 남자친구가 있다,
친구로서 얘기하고 싶었을 뿐]

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니


[동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장이 왔어요.


전 계속 연락을 해봐야 더 들쑤시는 것 같아
그 이후로는 답장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또 세 달쯤 지나, 새로운 도시에서
제가 어렸을 때 하던 전공의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때는 모든 게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정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받아서 너무 우울했거든요.


결국 또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번에도 자기 말이 맞다고 치열하게 싸웠어요.


그러다 조금 겁이 나서 제가 먼저 싸움을 멈췄네요.
“난 같이 이야기하고 싶던 것뿐이었는데,
괜히 연락을 해서 불편하게 만든 거 아니냐”
물었죠.


그러니까 “아니다, 네가 연락을 해줘서 난 기쁘다.”
하길래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렇게 산뜻한 마음으로 자고 일어나보니
연락이 하나 더 와있더라구요.


[너에 대한 내 사랑이나 애정은 진심이었고,
너와 있을 때 난 너무 행복했다.]
하구요.


아침에 부은 눈으로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저도 그때 감정을 솔직하게 적었어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너무 꿈 같아서 당신이 사라질까봐 늘 두려웠다.


그 초조함에 압도돼서 나는 이제껏
당신의 마음을 하나도 보지 못 했던 것 같다.
고맙다.]


하구요. 그동안 서로를 오해했던 배경을 설명했던 것

이었는데... 제가 너무 고백하듯이 말한 걸까요?
그 사람이.. 감동을 받아버린 겁니다..


[메일을 읽고 울 뻔 했다.
나의 방법이 이상할지언정, 난 너를 사랑한다.
꼭 기억해라.]


라고 답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갑자기 혼동이 왔습니다..;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는... 지경이랄까..


제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면,
이런 메일을 받았을 땐 당장 그에게 달려가
안기고, 키스하고 뭐.. 그러고 싶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제인 것이.. 갑자기
그 사람하고 연애하는 게 상상이 안 되네요.
손잡고 포옹은 좋은데 그 이상은... 


뭐랄까, 아빠하고 키스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느낌 처럼요..


그와 저는 굉장한 소울메이트!라고 여겼는데
그 사람은 그 연애모드이길 바라는 것 같아서..


그는 늘 애정표현을 해주고,
제 미래나 감정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알고 싶어하고 상담도 해줘요.


“네가 더 좋은 방향으로 자라게 해주기 위해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다”
고 해요.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전 정말 그 사람이 필요해요.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요.


지금 그 사람이 일 때문에 다른 곳에 가있어서
다음 달에 만나기로 했는데 너무 들떠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났을 때,
제가 한 발 빼려고 하면 배신감을 느낄까
하고 겁이 나요
.


하지만 얼굴도 보지 않고 섣불리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생각하냐”하는 얘기 했다가
그 사람을 잃을까봐 겁도 나고요.


그 사람하고 이번에 다시 얘기 나누기 시작하면서
우울증도 없어지고 개인 작업도 정말 너무 잘 되고 있어요.


정말 이기적인 건 알겠지만...
전 그 사람이 주변에 둘 ‘어른’으로서 너무 필요한데,
이런 식이면 제가 너무 나쁜 걸까요?


아니면 저 또한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건데,
나이 같은 조건들 때문에
‘스스로 벽을 치고 있는 건가’하는 의심도 들구요.


정말 모르겠네요..


혹시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저 자신에 대해서든, 그 사람에 대해서든
좀 더 이해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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