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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눈 뜨고 코 베인

2014.10.25 12:58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20대 중반 자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똘똘하다’, ‘영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탓에 저 역시도 제 자신이 엄청 잘난 줄 알고 살았었는데... 공부 머리 따로 있고 ‘여자로서의 머리’ 따로 있음을.. 이렇게 뼈저리게 깨닫고 있네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지만 제 마음 하나 털어놓을 곳이 없어 이렇게 감친연의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때는 제가 대학에 갓 입학하였을 때였죠.
‘파릇파릇’이라는 단어가 참 어울리는 계절이었습니다.


이렇듯 평온하던 학교 안을 시끄럽게 했던
커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소개해드리자면..


여자 아이는 저와 동기였어요.
몸매는 통통한 편이었고 예쁘지도 않은.. 평범한...
저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흔녀지만
그 여자 아이는 학창 시절 각반마다 있었을 법한,
착하고 조용하지만 존재감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한 학년 선배와 사귄 거예요.
이 선배와의 연애가 사람들 입에 회자됐던 건,
선배는 그래도 꽤 훈남인 편이어서
인기가 있었던 상황이라,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아주 예쁘게, 약.. 한 달간 사귀었습니다.
저희 학과 공식 커플로 유명했죠.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집니다.
이 선배가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뭐.. 선배 친구들, 선배의 선배들(다들 남자)이


“걔랑 해봤어?” 등 농담 짙은 질문을 했나봅니다.
남자들끼리이니.. 선배도 쑥스럽게 웃어보이며
“예, 우리 사이 좋아요^^”했나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 해드리겠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애매~하게 웃으며
“어~ 그래. 그렇겠지” 했나봅니다.


선배가 바보도 아니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자,
사람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알게 된 선배 여자친구의 실체는 의외였어요.


그 여자 아이는, 순수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셀 수도 없는 남자들과 몸을 섞고 다닌 것이었어요.
학교에 입학해서, 선배와 썸을 타던 시기부터 쭉- 요.


이제 학교 다닌 지 4~5개월 된 시점이었는데
(확인된 것만) 5명 이상의 학교 사람들과 자고 다녔으면
말 다 한 거죠..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가 자고 다닌 남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뭐 딱히 굉장한 썸이 있어서
마음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술 한 잔 하고 자연스럽게 동침. 의 코스가
습관이 되어버린... 타입의 여자였던 거였어요.


(그녀와 잔 사실을 그렇게 말하고 다닌 남자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똑같다”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에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건,
그 여자 아이도 워낙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과 자고 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선배는 기어코 이 사실을 그 여자애의 입에서
듣고야 만 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퇴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벙쪘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저희 학교는 알아주는 명문이라
들어오기도 무척 힘이 들었을 테고,


그리고 이제... 고작 한 달 사귀었는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여자애 하나 때문에
자퇴를 선택하다니..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한켠으로는 참 순수하다 생각도 들었어요.
‘요즘 세상에도 저런 순애보가 있구나’ 싶어서요..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더 이상 선배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선배의 자퇴 후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학교 안 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
선배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너무 깜짝 놀랐어요.
자퇴를 했으니까.. 눈에 잘 안 보이던 사람이었고,
마치; 저승에서 온 전화 같았달까;;
무튼, 그래서 받아봤더니, 


“페이스북을 통해서 너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고 있었다.
간만에 학교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 중인데,
나랑 저녁 한 번 같이 할래?”


하더라고요.
무척 친하게 지냈던 선배는 아니었지만,
뭔가..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이었고 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던 탓에
“그러마” 했습니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중소 언론사에서 인턴을 하며
잊고 살았던 진짜 꿈이 뭔지 고민하고,
시민운동 같은 것을 기획하고 있다”
하더군요.


흠....... 이게 제게는 좀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평소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던 제게,


열병 같은 첫사랑 때문에 학교까지 그만두는
순정파 이미지에
,


사회적 규범과 상투적인 기준들을 다 내던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가치를 찾아나서는 모습이
더해져
, 그가 너무나 멋져보였습니다.

 

과정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이차저차 사귀게 됐어요..;


꽤 오래 즐거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래봤자 3개월여.. 이지만 말입니다..


어느 날 저희는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들뜬 마음에 기차에 몸을 실었고,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 잠들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고 잠시 눈을 떴는데, 선배는 자고 있었고
정말 갑자기 아~ 무 이유 없이 핸드폰이 보고 싶었어요.
(아직도 이건 무서워요. 왜 그랬을까..)


전 여기서 어제. 무려 어제요.
선배가 어떤 여자와 주고받은 까톡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제 눈을 의심하게 하는 세 글자.


ㅇㅇㅇ


그녀였습니다.


그 여자 아이요. 선배의 마음을 그렇게 난도질했던,
그 여자요. 그 여자와,
저와 여행을 가기 하루 전 이런 대화를 나눴더랬습니다.


여자는, [지금 동기애랑 사귄다는 얘기 들었다,
나는 그때 그렇게 오빠 떠나보내고 너무 힘들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는 내용으로
선배를 흔들고 있었고,


선배는 이걸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나중에 ㅇㅇㅇ 가면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어요..
그저 지나가는 인사말이었을 수 있겠지만..
다음을 약속하다니요.. 전여자친구와.. 
지금 선배 곁에는 제가 있는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시끄럽게 했지만,
핸드폰을 몰래 본 것부터가 잘못이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따지고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한참 고민하던 중
..


선배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그런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갑자기,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네요.


“아직도 그 여자애랑 연락해?”


잠에서 덜 깬 선배는 잠시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다가,
제가 핸드폰을 들이밀며 선배 눈을 또렷이 바라보니
금세 알아듣고는 한숨을 내쉬더군요.


어느 노랫말처럼 마치 꿀과 같았던 여행길이
단번에 지옥길로 뒤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차에 나란히 앉은 저희는 도착지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길로 다시 집에 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저희 관계에 있어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위기를 회피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억지로 억지로
펜션까지 가서 선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보았지만


결국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허망하시겠지만,
제 이야기도 여기서 ‘끝’입니다.


저는 그 펜션에서 한참을 울다 혼자 집으로 돌아왔고
오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제 시간은 그때로 멈춰 있어요
.


가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제가 그때 핸드폰을 보지 않았더라면?
선배는 저와 함께 웃으며 여행지를 돌아다녔을 거고,
그날 밤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저와 함께 잤겠죠..


그게.. 이렇게 한순간 남이 될 수도 있는 여자와도
할 수 있는 행동들인지, 투자할 만한 시간이었을지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저도 참 바보 같은 게..
이 남자, 한 여자 아이 때문에
힘들게 들어온 학교까지 그만둔 사람
이란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서도,
그러고서도 당했네요...


저 같은 사람을 헛똑똑이라고 하는가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을 눈 뜨고 코 베인다,
하는가봅니다...


이제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
마음이 나아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렇게 가끔씩은 너무나, 너무나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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