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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너란 빛에서 생긴 그림자

2014.11.15 12:41
안녕하세요. 20대 후반의 남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 하고 많이 방황했습니다. 사람을 ‘필요’로 만났고, 사람을 평가하고, 가려서 사귀는 정말 악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고, 그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상처를 받는 사람은 그 마음이 연약해서라고 믿었습니다. ‘실연의 아픔이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믿었죠. 그러다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발표수업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소설에나 나왔던 표현이 이런 걸 가리키는 거구나’
하는 걸 느꼈던 게,


정말 강의실 한 가운데에서 ‘빛’이 났습니다.
그곳에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저희는 둘 다 대학교 4학년이었고
저는 외국에 잠시 나갔다 오느라
나이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호감은 있었지만... 글쎄요,
처음에는 제가 사귀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좀 그랬습니다.


저는 여자를 볼 때 지나치게 마른 것에 집착했었습니다.
그동안 만난 여자들 중 허리 24 이상은 없었을 정도..


특히 저도 말라서,
여자들이 마르지 않는 한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녀의 첫인상은 ‘뚱뚱하다’였습니다.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면 170cm에 52kg 정도였습니다.
제 눈대중입니다. 체중을 알려준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작아서... 몸이 더 커보였습니다.
저도 머리 큰 편 아닌데, 이 친구는 진짜...ㄷㄷ
엑스트라 알바하면서 본 연예인보다 작았어요.)


그런데 전 좀 독특한 몇 부분 때문에
제 스타일도 아닌 그녀에게 푹! 빠지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집이 있었는데,
그 샌드위치를 사들고 그녀를 찾아갔던 날이었죠.


미대생이었던 그녀는 마침 유화작업 중이었어서
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 포장지로 몇 겹을 더 싸서
조심조심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여자와 그 샌드위치를 먹어봤지만,
그런 기분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먹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껴안으면, 기름 냄새가 났어요. 
유화물감 녹이는 기름이요.


처음엔 화장품 냄새나 향수냄새 샴푸냄새가 아닌
그 냄새가 여자한테서 나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제가 딱 안으면 그녀의 정수리가 보였는데,
단정하게 빗은 긴 머리사이로 느껴지는
그 기름 냄새가 너무 좋았습니다
.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얼굴이 예뻐서, 몸매가 좋아서
좋았던 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서로 미친 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좋아지고 나니, 뚱뚱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저희는 철없던 20대 초중반...
결국 같이 살기로 합니다.


무모했지만, 너무 좋아했으니까..
같이 지내는 것 자체가 정말 좋았습니다.


싸우지도 않았구요, 서로 성향도 너무 잘 맞았구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잘 맞았습니다.


모든 면에서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그 흔한 말싸움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국내는 거의 전역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차가 생긴 이후에는 더 편해졌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고기 구우면서 프로젝터로 영화 보기,
끝나면 만화책방 가서 서로 취향대로 빌려서 보기,
같이 게임하기 등등..........


즐거운 기억이라면 끝도 없이 많았습니다.

음.. 근데 이제 슬슬 문제점이 등장할 타이밍이죠.
이 문제는 대학 졸업 후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서로의 성향이 너무너무 달랐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혼할 배우자는 가치관이 똑같아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질 못 했습니다.


(성역할을 고정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지만)
저도 몰랐던 제 취향은 여성과 같았습니다
.
(오해 마세요.. 완벽한 스트레이트입니다.)


저에게는 애정결핍이 있었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경제적 가치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의 모습으로는
남에게 적당한 돈과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없다.
일단 부모님에게 받을 것은 받고,
사회인으로서 완성이 되면 일을 하자(학업을 계속하자)”


였습니다.


반면, 그녀의 성향은 남자 같았네요.
(물론 여자 같은 면도 충실했어요.
요리를 좋아하거나, 꾸미는 것을 좋아하거나..)


경쟁을 즐긴다거나, 독립심이 강하거나 이런 것들이요.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을 원했고,
저와 노는 것은 하찮은 것이라고 간주했습니다.


월~금 하루에 12시간씩 연속으로 일했고,
토, 일도 4시간씩 아이들 개인지도를 했습니다.


뭐.. 이런 문제들로 잦은 다툼을 겪어내고 있었죠.


하지만 아직은 서로 좋아하니까
이차저차 고비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이 좀 꼬여서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되면서

일이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게 됐고


군대에 가게 되니 그녀의 성향은
점점 더 독립적으로 변해갔습니다
.


군 생활 동안 면회는 안 왔구요.
편지도 3통인가 보냈고, 심지어 전화도 안 됐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학원이다 바쁘다, 강사회의 중이다 수업 중이다.”
이러면서 끊고...........


하지만 바람을 피우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타입도 아니었구요.


그리고 그건 제가 잘 압니다.
바람도 피워본 ㅅㄲ가 안다고,
제가 촉도 조금 있어서 바로 아는데, 
누군가를 만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점점 휴가를 나오지 말랍니다.
자기가 월차를 빼야 되는데 쉽지 않다고,


저는 저대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월차도 제대로 안 나오는 그딴 직장에 뭐 하러 다니냐”
고,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되냐”고..


저도 생각 없이 뱉은 말은 아니고,
진짜 도저히 눈 뜨고는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남자친구인 절 안 챙기길래 한 말입니다
.


위에서도 보셨듯 저는 여자 같은 세심한 타입이고,
제 말이 어떤 파장을 줄지 잘 알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고의적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뭐.. 그런 식의 상처가 계속... 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둘 다 지치기 시작했겠죠.


그러다가 제가 군대에서
매우 큰 사건을 터뜨려서 군사재판에 회부가 됩니다
.


특히 저는 CP라고 불리는 2성장군(사단장) 비서였는데,
제 스스로, 이건 사단장의 얼굴에 먹칠이라고 여겨서
정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전 애초에 스트레스를 잘 받는 타입이었고,
남들에게 쉽게 마음도 열지 않는 데다가,
다른 전우들 보다 나이도 많은 상태에서
진심으로 소통하는 상대도 없었기에 좀 힘들었습니다
.


또, 점점
부대에서 하는 일이 전부 하찮게만 느껴지기 시작했고

미래에 대한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날 챙겨주지 않는 여친...


(애초에 군대를 오면서 인생자체가 크게 뒤틀렸거든요.
인생에 대한 계획이 전부 틀어졌구요. 국적 문제라든가..


그리고 철없는 생각이지만,
여자친구는 제가 기댈 유일한 상대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자살을 생각하게 됩니다.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자살은 나약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여기고 살았습니다.
죽는 것도 무서웠고요.


하지만 그때만큼은 생에 어떤 미련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지,
부대에서 재판도 받지 않은 저를 외박을 줬습니다.
절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있는 휴가도 자를 판에..)


역시나, 그녀만 생각났습니다.


근데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니, 
“1박2일로 친구들과 펜션에 가야 하니 나오지 말라”
고 하더군요. “나와도 날 못 볼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녀가 잠시 시간이 비는 때 찾아가서
“안 가면 안 되냐”고 붙잡았는데
(자살하는 사람들의 흔한 패턴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 희망에 대한 집착이랄까..)


겉으론 제가 워낙 멀쩡해보였는지 그녀는


“나는 남자친구에게 목매는 여자 이미지는 싫어”
(=친구들한테 ‘오빠 휴가 나와서 펜션 못 갔다’
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라는 신여성 사상을 웅변했고,


저는 3년 넘게 사귄 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싫다.. 너 정말 싫다”


라고 정색을 했습니다.


그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리더군요.
하지만 제가 차를 타고 떠나는데 잡지는 않았습니다.


혹여나 해서 저녁을 먹고 그녀의 집에 가보니
텅 빈 집에 개만 묶여 있더군요.


그래서 전 제 짐을 썼고,
포스트잇에 [잘 가라]하고 나왔습니다.
(이것도 여자 같네요-_-)


그 뒤부터 전 그녀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
다시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


군인 주제에 여자들 헌팅해서 모텔 데려가고
군인 주제에 썸녀 만들어서 밥 먹고 놀다가
아는 애들 불러서 같이 영화 보고
, 놀고, 그랬습니다.


근데 여자들과 끝까지 간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이게 실연에 괴로워한다는 거구나’
라는 걸요.


평소처럼 한 것이었습니다.
여자랑 헤어지면 다른 여자 만나 놀고 잊고 하는 게..


근데 이번엔 안 되더라구요.
이젠 뭘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한번 실연에 아파보니까 남한테 상처주기는 싫은데
가만히 있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고..


그래도 꾸역꾸역 참았습니다. 지금도 참고 있구요
지금도 한 3개월밖에 안 흐른 것 같은데
어느새 1년 전 일이 되었네요.


그런데 제가 참다 참다.. 편지를 보냈습니다.


절대 다시 만나자거나 그런 건 아닌데,
마침 그 날이 그녀의 생일이라
너무나도 미칠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생일 축하해. 미안해, 고마웠어]
이렇게 편지를 보냈는데,

 


수취인이 어머님으로 되어 있네요ㅋㅋㅋㅋ


사귀는 동안 흔치 않았던 일인데, 아마 어머님이 
생일상이라도 챙겨주시려고 올라오셨나봐요


‘낮 11시’‘수신인과의 관계: 부모’ 이래가지고
딱 이름 가려도 너무나도 많이 들어본 그 이름으로
사인 하셨더라구요.


어머님과는 사이가 무척 좋아 밥도 함께 먹고
영화도 셋이서 같이 보고 집에도 놀러가고
군대 갈 때는 조심하라며, 3천배인가를 하셔서(ㄷㄷㄷ)
순금 부적을 넣은 염주를 만들어주시기도..


절 사위로 생각하셨나봐요.
(저도 사위 되려고 했습니다 어머님)


그 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냥 별 생각 안 하셨을까요?


남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해프닝일 수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녀와 만나고 헤어졌던 것이 벌써 1년 전 일인데 
그걸 아직도 잊을 수 없고
, 너무나 아프다는 게....
그게 가장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너무도 행복했던 나날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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