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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나를 죽인 그 노트

2014.11.16 15:56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스물아홉이 되는 자매입니다.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감친연.. 그냥 심심할 때마다 제 친구가 되어주었던 아이인데.. 이렇게 제 이야기를 보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황망한 연애담이 생겨버려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봅니다.

 

 

제 남자친구를 만난 것이 벌써 재작년이네요.
저는 지인의 소개로 남자친구를 알게 됐습니다.
소개팅은 아니고 그냥 술자리에서요..


그는 저와 동갑이었고 그냥 평범한 공학도였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 제 스타일...
제가 뭐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잘 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


저만 꽂히는 그런.. 마스크가 있거든요.
슬픈 눈을 가진, 동안상인데 눈코입 오밀조밀..
(이렇게 말하니까 객관적으로 잘 생긴 것 같기도..)


아무튼 그러한데,
그가 그러한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계속된 임용 낙방으로 멘탈이 탈탈..
그리고 계약직 교사 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저의 비루하고 남루한 멘탈에 그 사람의 등장은
정말 한 줄기 빛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친구와 곧장 남녀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를 소개해준 지인도 “너네 사귀어봐” 하고
소개해준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사실 저는 대학 시절 받은 어마무시한 이별의 상처,
‘이대로 가다가는 난 평생 백수?’ 이런 마음의 짐..
때문에 연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랬기 때문에 섣불리 그에게 다가가기보다는,
그 ‘빛’과 같은 아이와는 친구처럼 지내면서
힘들 땐 서로 기대고, 재밌는
, 밝은 이야기도 듣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


(정말 공부한답시고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깥 세상에서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떨어져서 사람 자체가 어두워진다니까요ㅠㅠ
그래서 이런 친구가 정말 절실합니다..)


그래서 가끔 공부하다 지치면
그 친구를 불러서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했고
잠들기 전에 까톡 혹은 전화를 하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들은 정말 친구들 사이의 그것..
내숭 쪽! 빼고 병맛 농담을 하거나
[ㅅㅂ]라든가 [제길]이라든가 과도한 [ㅋㅋㅋㅋㅋ]
가 난무하는 친구 사이의 까톡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엄청엄청... 심하게...... 시험을 못 본 겁니다.
‘내가 지난 1년간 도대체 뭘 한 거지’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한참을 ‘엉엉’ 울다가
문득 그 친구가 떠올라 그를 불러냈습니다.
“술 좀 사달라”고요..


그래서 술을 마시면서 제가 넋두리를 늘어놓았는데
이 친구 눈빛이 평소랑 다른 겁니다-_-?


절 엄청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무한, 따뜻한 아버지의 위로를 퍼부어주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네가 공부를 안 했겠지ㅋㅋ”,
“닥치고 술이나 마셔” 했을 텐데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고맙고, 편안하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인석이 갑자기
우리 사귈래 라는 겁니다!!?!


‘우린 가족이고 친구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동안은 네가 오래 만난 친구처럼
편안했고 귀엽기만 했는데


요새는 널 보면 자꾸 여자로 느껴지고
오늘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네 곁을 지키면서 힘이 돼주고 싶고,
널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하면 널 잃을 수도 있다
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이 말을 안 하면 내 마음도 너무 무거울 것 같고


내 마음 숨기고 계속 널 만나면
그게 또 내가 좋아하는 널 속이는 게 되지 않겠냐”


면서 정말 진솔하게 고백을 해주더라고요.
말을 얼마나 예쁘게 하던지.. 전 “그렇게 하자”
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건데,
저희가 항상 말로는 ‘친구, 친구’ 했지만
뒤돌아보니 100% 친구는 아니었던 듯싶어요.


온갖 끼부림이 난무하는..
애매한 줄다리기의 연속이었죠.
그래놓고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부농부농을 만끽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동안의 친구모드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깨끗이 잊어버리고
온전한 연인모드로 돌입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절 정말 특별하게 생각한다 느꼈던 게,
남자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
(예를 들면 소속 학교라든지, 가족 이야기 등등)

를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정말로 안 좋아했는데,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잘 입을 열지 않았어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저를 자기 집에 데려가서 부모님을 뵙게 했고
그 후로도 종종 가족들과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


이런 점이 제게는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남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영역에
저만 데리고 가준다는
.. 특혜를 받는 느낌..?


그래서 ‘내가 이정도로 사랑받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주는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어요.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둘의 사랑이 ‘역전’된 것이요.


저희는 그래도 1년째까지는
일주일에 1회 이상은 꼭 보았었어요.


우리 두 사람의 마지노선이랄까요?
주 1회는 그런 ‘기준’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친구가
“공부가, 일이 바빠져서 못 볼 것 같다”
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저희는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살았는데도
한 달에 한 번쯤은 꼭! 2주 동안 못 보기도 했어요.


그리고 또 제가 힘들었던 것은 연락 문제..
남자친구는 평소 까톡만 주구장창 하고,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와서 “어디냐” 묻는 것 빼고는
전화를 안 해요;; 정말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요)


“전화를 왜 안 하느냐” 물으면 “전화가 안 맞는다”고..
까톡만 주구장창 하는 건 저한테 안 맞는데..


전 이런 문제들은 조곤조곤 차근차근 설명해줬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더군요. 어려운 일이었나봅니다.


뭐 이런... 문제들로 투닥투닥 싸우면서,
또 어떤 날은 부농부농도 하면서...
너무나도 평범한 연인들처럼 잘 지내............
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어제. 바로 어제 일이 터졌습니다.


어제가 저희 700일이었거든요.
그래서 명동에서 만나서 밥을 간단히 먹고
에이랜드 맞은편에 있는 콩다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가방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더라고요.


‘선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전 얼마 전이 남자친구 생일이었어서
꽤 괜찮은 지갑을 그에게 선물하기도 했으니
난 700일 선물을 가볍게 받고 퉁치자

이런 암묵의 동의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래서 건네받고 보니,
촉감은 책..? 이었습니다.
뜬금없이 무슨 책을 샀나 싶어
제가 포장지를 뜯어보려고 하니까


남자친구가 집에 가서 보라는 겁니다.


‘무슨 선물을 했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시나’
싶어 궁금증이 극에 달했지만
간만의 서프라이즈 상황이 설레기도 해서
“그러마” 하고 가방에 넣어뒀습니다.


다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문득문득 가방 속에 있는 그 선물이 생각나면서
‘빨리 집에 가서 열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괜히 신이 나고 행복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한 10시쯤..? 둘 다 피곤해져서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죠.
남자친구는 잠시 들릴 데가 있다고 하면서 갔고
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금요일 밤인데도 다행히!!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고, ‘집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싶어 선물을 꺼내서 포장지를 북북 뜯었죠.


그런데 그 안에는 책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늘색 일기장 하나가 있었어요.


책장을 펼쳐보니,
남자친구가 이제까지 저를 만나서 있었던 일들,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하루하루
적어내려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


뭉클


했습니다.


이 세상에 ‘뭉클’이라는 단어가 없었으면
얼마나 내 마음이 답답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말이 적. 확. 했어요.


그렇게 저는 명동에서 저희 집까지
(버스로 한 40분은 걸립니다)
눈물도 흘려다가 함박웃음도 지었다가를 반복하며
그가 꾹꾹 눌러써내려간 그 일기장에서
눈을 떼지 못 했습니다
.


정말 절 본 사람들은 미친 줄 알았을 거예요.
이제까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감동이었으니까..


그렇게 버스에 혼자 앉아 노트를 보며
훌쩍거리는 게, 만면에 미소를 띄우는 게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

전 버스에 내려서도,
일기장에 눈을 고정시킨 채,
앞도 안 보고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써준 일기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전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연애가 그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그 뜨거움이 사그라들기 마련이지만
700일 선물이라기엔 조금..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어조가 점점 차갑게..? 딱딱해져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읽는 속도를 높여
더 빠르게, 빠르게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렸습니다.


그 순간
‘이 일기장의 마무리는 과연 어떤 모양일까’
가 미치도록 궁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명동에서부터 읽기 시작한
일기장을 제 방에서 모두 읽어냈고,


그 마지막 페이지엔,

 

 

 

 


이별 통보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글쓰다보니 그 놈 정말 못됐네요.
참... 선한 사람인데.. 이별의 순간엔
이렇게 잔인하고 이렇게 나빴어요.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오면서 울다 웃었던 제 모습이
너무나도 바보천치멍청이 같으면서도 너무 초라한 게
..


믿을 수가 없어 그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냥.. 헤어지고 싶으면
어제 그 콩다방에서 그만하자고 하지
..
이게 뭐하는 건가 싶네요..


도대체 이건 무슨 경우인지....
이게 어제 일인데, 일기장 읽고는 서로 그 누구도
연락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


지금 너무 당황스럽고 황망하고... 힘드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ㅎ........


이게 그가 원한,
우리 700일간의 만남의 마지막 모습인지..
너무나도 슬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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