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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난 실리콘이었구나

2014.12.13 14:41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까지 쿨한 척하다가 연애를 잘 모는 채 나이가 들어버린 처자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래도 더러운 일은 안 생겼었는데.. 이번엔 비겁하고 더러운 일이 생겼네요. 일주일 전 깨빡난 연애가 괜찮다가도 다음날이면 화가 솟구치고... 이럴 필요 없다고 다독여보지만 자꾸 생각하게 되고 제가 등신인 것만 같네요..

 

 

그 사람과는 4개월쯤 만났습니다.
(이제 생각하면 그게 ‘연애’였는지,
단순 ‘연락’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그에게는, (이하 똥개라 하겠음)
일반 회사에서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기에 끌렸습니다.
지금은 이직 준비 중에 있구요.
 

똥개와 데이트를 하면 
보통 그의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식을 해먹으면서 함께 지내거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만났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저를 주변 친구들에게
여자친구, 형수 등등으로 소개하고
스킨십도 서슴없이 하는 똥개였습니다.
 

연락도 매일, 하루 종일,
일어나면, 틈틈이, 자기 전 영상통화 한 시간 이상
등등으로 무척 자주 해서 마음에 대한 의심
전혀 하지 않았었습니다.
 

여기에 똥개는 “사랑한다”는 말을 퍼부어줬고
“함께 지내자”는 말들을 자주 해줌으로써
없던 신뢰도 만들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강력했겠죠.


무엇보다 제가 똥개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 쯤 전에
제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똥개의 핸드폰을 열어보게 됐습니다
.
(그 전까지는 쿨한 척하느라
똥개 핸드폰은 쳐다도 보지 않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집에서 같이 자고 있었는데
그가 잠든 사이에 문자 보낼 데가 있어서
잠시 빌리려고 열어본 거예요.


그런데 웬 여자에게서 부재중통화가 와있더군요.
그것도 늦은 밤에요. 느낌이 왔습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날 똥개는
술에 취해 자는 중에 핸드폰을 뒤적거렸습니다.
그때 대화한 내용이었습니다.


연인과의 대화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문자만 봐서는 확신은 서지 않았습니다만,
까톡에 즐겨찾기가 그 사람 하나 되어있더군요..
저와는 아이폰 아이메시지로만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걸 확인하자 기분이 너무 나빠져서
바로 핸드폰을 내던지고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때에는 ‘여자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으로
‘끝이다’ 하고 얼어 죽으라고; 창문 열어놓고
사줬던 팔찌를 빼 던지고 나왔습니다.
 

다음 날 똥개가 무슨 일이냐고 닦달을 하기에
못 이긴 척 만나서 핸드폰 본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근데 웬 걸요.. 그 얘기를 꺼내자마자
다신 연락안하겠다고 바로 사과를 하는 겁니다.


“지금도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데
네가 싫다면 다신 연락 안하겠다, 앞으로 잘하겠다”

 

하더군요.
솔직히 저는 “남의 폰을 왜 뒤져보냐”하면서
저를 이상한 여자 취급할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나오니
저도 당황했어요.
 

그래도 께름칙한 마음에 누구냐고 묻는데
끝까지 대답을 피하다가 “전여친이냐”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서 얘기 할 것도 없었답니다..
 

옥신각신~ 하다가 넘어가버렸네요..
이런 등신..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넘어간 이상 ‘그래도 믿어보자’
는 마음으로 그 사건은 깊숙이 묻어뒀습니다.
똥개가 제게 보여주는 것만 생각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2주 뒤 우연히 다시 핸드폰을 열었는데
(아무리 다짐을 해도 한 번 겪으니 손이 가더군요)
문자 연락을 또 하고 있네요. 만난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
그 여자의 전화번호를 메모해 두고는
핸드폰 얘기를 했더니 계속 미안하다고 싹싹 빌면서
진짜 이런 일 다시는 없을 거랍니다..
 

괘씸해서 이틀은 연락 안 했습니다.
잠수를 탔는데 전화가 계속 오네요.
[답답하다 보고 싶다] 문자가 옵니다. 


... 넘어갔습니다.
정말 저는 도깨비에 홀렸었나봅니다.
 

이 시점에서 만났던 것은 도저히
잘 만났다, 잘 사귀었다 소리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억지로, 이차저차 만나고는 지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뭔가
절 대하는 게 전과는 다르다고 생각돼서
저번 주에 묻어뒀던 걸 열어봤습니다
.
 

전여친 번호 말입니다.


이걸 저장해봤더니 바로 까톡이 뜨네요.
헌데...... 프로필사진이 왠지 낯이 익습니다..?
 

며칠 전 똥개는 저에게 사진 하나를 보냈었거든요
눈 위에 ‘제 이름’과 하트를 써서 사진을 찍어서요


그런데 그 여자의 까톡 프로필은
눈 위에 ‘그 여자의 이름’과 하트가..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전 망설임 없이 이걸 캡쳐해서
똥개에게 문자로 보냈습니다.
(지나고 보니 여자한테 제 걸 보낼 걸 그랬어요)
 

[더 이상 우스운 사람 안 할랍니다]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30분 뒤에 [미안해요] 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설마 이게 일까.......... 했습니다.
진짜 설마.
 

그러고 나서 한 시간이 지나도
전화도 문자도 없길래


[쉽고 간편해 좋겠어요]
라고 보냈습니다.
(이것도 보내지 말 걸.. 그랬습니다)
 

답은 없었어요.


이렇게 똥개ㅅㄲ랑은 끝입니다.
그 뒤로 저도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고 있구요.
  

그런데 그렇게 멘붕을 겪고 나서 이틀 뒤,
이성을 좀 차리고 나니 그 여자가 궁금해지더군요.
 

그 여자의 페북을 뒤져봤지요. 나오네요.
각종 정보가 공개 되어있습니다. 공무원입니다.


참.. 똥개는 1년 전 헤어졌다는 여친을
틈틈이도 만나왔네요
.. 괘씸해라....
 

게다가 몇 주 전에는 [사랑한다]는 댓글도 있습니다.
그 댓글을 단 시간 이후에는
저와 함께 있었는데 말이죠
..


그 뒤로도 바쁘다고, 못 만난다 했던
똥개의 생일에도 그녀와 함께 있었더군요.


그런데 정말 이상해요..
왜 저를 만난 건지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와는 연락도 자주 했고, 또 자주 만났고
제 생일날에는 노래도 불러줬고
(성의는 떨어졌지만) 선물도 받고 했는데 말이죠..
 

도대체 저를 왜 만난 걸까요..?


그런데 제가 정신 차리고 종합해보니
그냥 저는 ‘실리콘 인형’ 같은 존재였구나 싶습니다.
(비참하네요..)


왜 이걸 감쪽같이 몰랐는지
제가 다 민망하고 스스로가 멍청해보일 지경입니다.


저는 그냥 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려는 마음이었는데
.....


앞으로 어떻게 믿고 사람을 만날지 걱정됩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밀당해야 하는 게 연애인가요?
 

그래서 저도 스스로의 문제를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그동안은 연애를 할 때는
재밌게 잘 놀고 낄낄대는 즐거움에 속에 파묻혀서
줄곧 사람들을 만나왔었는데..
 

지나고 보니 연애라는 것에 있어서
저라는 여자는 의심할 줄도 모르고 낄낄대기만 해서..
이렇게 된 것도 제 행실이 좋지 못해서
질 떨어진 걸 만난 것 같고 그렇습니다
.


그리고 똥개가 몇 번 신뢰를 무너뜨렸을 때
확실히 잘라냈어야 했는데 이게 다....
제가 서투르고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것도
잘못은 잘못인 것 같습니다
.


이거 뭐.. 자기 반성하느라 글이 길어졌는데
지금 저의 고민은 그 여친에게
이 사실을 알리느냐 마느냐 입니다
.
 

의미 없음을 알지만 괘씸함과 분함에
밤에 자다 깨고를 계속 반복 중입니다
 

여친에게 보낼 대본만 주구장창 수정하고 있습니다.
보내봤자 저에게 남을 것은 없을 것 같지만,
빨리 잊어버리는 게 제일 속편하다고 얘기하지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잊어버려도 제가 우스워지는 것 같고,
또 알린다고 해도 분해 하고 있는 걸
표현하는 것 같아 자존심상하고,
뭔가 보복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구요..
 

저는 정말 등신인가요...?
...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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