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한소개팅][황망한연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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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소개팅] 맞선면접

2012.03.5 14:24

요새 좀 무거운 얘기가 많은 거 같아서,

(하.. 그만큼 무거운 연애하는 분들이 많으신건가요...)

그냥 웃으시라고 제 옛날 이야기 하나 제보합니다.

아 물론, 저도 당시엔 별로 재미없었던 일이지요흐헝흐헝흐헝.

 

.. 몇해전이던가요...

제 나이 스물 아홉살되던 해의 일입니다.

계속되는 야그닝으로 까칠푸석레벨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그때,

백수로 웰빙하던 모친 동무님들의 딸들

하나씩 둘씩 의사님, 변호사님, 도련님들에게 시집을 가기 시작했고,

한때 엄친딸(그땐 공부만 잘하면 만고땡이었음)이었던 저는

시집도 못가는 넌 30년 인생을 헛살았다.”

모친의 모진 구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때,

마침 웰빙지수 1위로 꼽히는 안락한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된 저는

룰루랄라 남들처럼 요가도 댕기고 헬스도 댕기고

스킨케어도 받으면서 나인투세븐하는

알흠다운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만 해도

피부와 머릿결이 달라지는 것이었군요!! 

 

스물아홉을 찍고 나니,

소개팅얘기는 쑥 들어가고,

대신 여기저기서 선을 보라는 얘기가 오가던 중.

집안 어르신 한분께서

외국에 나가 있는 후배분의 아드님을 만나보라고 하셨지요.

 

뭐 저희 집이 어른이 말씀하시면

일단은 옛썰!!” 하는 분위기라,

그런갑다. 나 선보는갑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저녁.

아버지께서 팩스 한장을 들고 오시더군요.

다름아닌 맞선총각의 이력서였습니다.

모임자리에 맞선총각 아버지가 들고 오신 것

저희 친척 어르신께서 접수하셔서

아버지께 팩스로 보내신 거였습니다.

 

조금 특이하다 싶었지만 선경험이 많지 않았던 저는,

, 맞선은 이렇게도 보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지요.

 

이력서를 보니 먼나라에서 아인슈타인스러운 공부를 하는,

공부 아주 잘하게 생긴,

아톰 체형의 아담한 총각이었습니다.

왜 얼굴만 나온 증명사진을 봤는데,

키가 보이는지 스스로도 조금 신기합니다.

 

부친께서 말씀하십니다.

저쪽에서 이력서를 주었으니, 네 이력서도 한장 넣어드려라.”

이메일로 후딱 넣어드렸습니다.

어른 말씀이니까요.

 

그리고 그 맞선에 대해서는 더는 언급이 없었더랬습니다.

 

두어달후.

 

사무실에 일하고 있는데 인턴냥이

대리님을 찾는 융자상담 고객이 오셨다.”고 합니다.

마침 팀장님도 자릴 비우셨고,

어차피 누가오셔도 제가 나가야 할 일이라,

수첩 주섬주섬 챙겨들고 상담실로 향했습니다.

 

저희 사무실의 상담실이란,

푹신한 가죽소파 있고

무거운 원목탁자있는 그런 분위기

 

 

절대 아니고.

사무실 한켠에 책상 놓고 낮은 칸막이로

대충 만들어 놓은 오픈 공간이지요..

 

상담실에는 중년의 신사분이 앉아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상담을 오셨으면 말씀을 시작하셔야 할텐데,

제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십니다.


ㅙㅙㅙㅙ!!??



전 당황해서 뻘쭘히 웃으면서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말문을 떼는데,

이 고객님이 서류봉투에서 무언갈 주섬주섬 꺼내십니다.

사업 설명서겠거니 하고 쳐다보는데.

 
 

.마이..

 
 

. 그것은 저의 이력서였습니다.

형광펜이 싹싹 그어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빨강 동그라미도 보입니다.

 

따로 모시고 나갈 새도 없이,

이미 좌정하신 과학소년의 아버님께서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셨습니다.

 

과학소년 아버님, 제 이력을 차근차근 (소리내어)읽으십니다.

과학소년 아버님,  아버지의 이력을 (소리내어)읽으십니다.

과학소년 아버님,  어머니의 이력을 (소리내어)읽으십니다.

 오라버니의 이력도 (소리내어)읽으십니다.

생년, 고향, 집주소,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직장, 자격증까지

빼놓는 거 없이 또박또박 (소리내어)확인하십니다.

 

목청은 어찌나 낭랑하고 또렷하신지

사무실 구석구석 또랑또랑 울립니다.

휴가철 한가하던 때의 사무실은

그날따라 얼마나 조용하던지요.


저희 가족의 이력만이 적막한 사무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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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년 아버님은
댁의 아드님 이력서를 꺼내시어
,

제게도 한장 건네주시더니 다시 읽어주십니다.

당신의 이력도 차근차근 말씀해 주십니다.

과학소년의 형제들은 무슨무슨 전문직으로

어디어디에서 근무를 한다고 하십니다.

아드님 우등상과 졸업장, 성적표 사본

봉투에서 꺼내서 보여주십니다.
 

어렸을 적에 공관에서 자라서 영어도 잘하고

악기도 아주 잘 한다고 합니다.

무슨 교수님한테 배웠다고 교수님 성함도 말씀해주셨는데,

조예가 없는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제 키가 얼마냐고 물으시어 답해드렸더니,

우리 아들이 작은 편이라서 잘됐다고 하십니다.

공부를 한다고 하면 반대를 하지는 않겠으나

학비를 주시기는 어렵다고 하십니다.

아드님이 여름에 들어오니 그 때 얼굴을 보고

결혼은 아드님 겨울방학 때가 어떠냐고 하십니다.

얼마 전에 큰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는데 방이 남는다고 합니다.


아마도 분가는 안시켜 주시려나 봅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직장생활 중 가장 길었던 50입니다.

‘상담’을 마치고 지하철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맞선남-부친-선생님께서 흐뭇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십니다.

 

머리끝까지 가 뻗쳤지만

입꼬리에는 영업용 스마일을 살포시 걸치고 있었습니다.


전 프로
니까요.

지금은 근무시간 중이니까요.

여기는 제 직장이니까요.

 

 

씩씩 코에서 불을 뿜으며 사무실에 올라왔습니다.

직원들 다들 저 들어오는 것만 바라보다가

제가 들어서니 동시에 문에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더군요.



이런 우라질!!!

 
 

인턴냥한테 다가갔습니다.

고년은 터질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열심히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더군뇨.

 

인턴아.. 언니 상담하던 거 다 들렸냐?”

“네, 대리님, 다 들렸어요.

“열라 잘 들리디?”

“네, 열라 잘 들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저 대리님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인지 몰랐어요. ㅋㅋㅋ

 

팀장님께 앞으로 가 섰습니다.

팀장님, 업무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냐. 고생했어. ㅋㅋㅋㅋ

내 은행생활 30년에 이런 건 또 처음이야. ㅋㅋㅋ

 

 

파란 하늘황달이 스치웁니다.

 

 

 

 

 

이면 참으로 좋았겠으나,

또 두어달이 지나,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왔는데,

운동하는 사이 전화가 10통도 넘게 와 있습니다.

모르는 번호이고,

문자에 정체와 용건도 남아 있지 않아

콜백은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운동-집의 뻔한 일상인데,

오늘따라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전화는 왜 안받았냐고 채근을 하십니다.

 

? 엄마가 나의 핸드폰 상황을 으찌 아시누?’

 

갸우뚱하고 있는데,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그 과학소년이 제가 전화를 안받는다며 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합니다.


-_-+

 

운동 가면 전화 안받는 애라고,

11시는 되어야 집에 온다고 얘기했다고 전해주셨어요.


이거슨 11
시에 다시 걸란 얘기

 

 

가 아니지요. 당연히!

그런 시간에는 열라 친하거나 열라 급한 일아니면

보지도 못한 사이에 전화 걸구 그르시면

아니 아니 아니되오.

 

11시가 되니 칼같이 다시 울리는 핸드폰.

저는 애인이 아닌 남자와 10시 넘어서 통화 안합니다.

전화가 세 번이 옵니다.

안받았습니다.

내일 다시 전화하겠거니 하는데,

 

 

. . .

 

집 전화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잠에서 깨십니다.

엄마가 수화기 들고 제 방으로 들어오십니다.

잔다고 하시라고,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거 받기 싫다고 도리질을 쳤습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다시 전화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습니다.


압니다
.

훌륭하고 똑똑한 분인 거 압니다.

착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못만나겠습니다.

 

어제 오후 비행기로 오셨다고 합니다.

오자마자 전화를 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버지 면접에서 1등한 모양입니다.

.

 

거짓말 잘 못하지만 정말 도저히 못만나겠습니다.

너네 아빠 이상하고, 너도 좀 이상해!!!!!”

라고는 차마 할 수 없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비교적 하얀 뻥을 쳤습니다.

 

과학소년님 충격을 받으셨는지 한 5초 정도 말이 없더니,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깔끔하게 전화를 끊어 주셨습니다.

이 사건 중 가장 다행스런 부분입니다.
 

직장급습까지도 아드님 사랑에 그러실 수 있다고는 쳐도

저 거기서 밥벌어먹고 살아야 되는,

나가서 커피 한잔 정도는 해주실 수 있잖아요.

 

잠깐 서울 들어와서 바쁜 건 알지만,

저도 제 생활이 있는 사람이고,

무슨 오분대기조도 아닌데

전화 두 번 정도 해서 안되면,

정체와 용건을 문자로 남기는 정도의 상식

원하는 게 과한 건 아니잖아요. ㅠ 
 

오밤중에 집전화는 진짜 쫌 아니잖아요.

 

여튼, 내고 집에서 구박 안당하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엉엉엉.

 

혹시 맞선관련하여 이력서 보낼 일 생기시걸랑.

사무실 주소 깔끔하게 지우는 것.

잊지마세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며 진짜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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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에서 바로가기 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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