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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연애담] 어린사랑

2012.05.29 16:52

제보 전에는 제보필똑을 읽습니다. → [회람] 제보의 모든 것!!! - 제보전에 완전 필똑!!!

글 전에는 댓글필똑을 읽습니다. → [긴급회람] 댓글과의 전쟁 - 꼬꼬마들 전성시대


저는 서른살의 남자입니다.

이 사연은 황망한 연애담도황망한 소개팅도 아닌 그냥 흔한 어린 사랑 이야기에요. 



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생의 연애는 곧 인생의 종말'이라는

어머니의 세뇌교육 덕분에

여자에 대해서는 조금의 흥미도 관심도 없는 남자로 자라나

스무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저는

'이제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매일매일 가슴에 잔뜩 부푼 꿈

여러 봉지를 품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 여러봉지 중에는 물론 연애봉지도 있었습니다. :D

 

연애가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냥

'나도 이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거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달님이를 알게 되었어요.

달님이의 첫인상은 참 참했어요.

정말 참한 여성의 표본이라고 할까요.

그냥 그 말 외에는 그 아이를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처음에는 별로 친하지는 않았었는데

같은 수업을 듣고 이래저래 문자도 주고 받다 보니,

정말 짧은 기간에 친해지게 되었어요.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 문닫을 때까지 같이 공부도 하고,

밥도 매일 같이 먹었습니다.

공강시간이면 만나서 같이 놀고.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달님이를 좋아하게 되었나 봅니다.

 

문자 발신인에 '달님'이라고 적혀있으면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요.

 

지금이야 그런 상황이 되면

'내가 달님이를 좋아하는 갑다!!!’하고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지를 고민했겠지만

그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어요.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문제였죠.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요.

누굴 좋아한다는 벅찬 감정의 정체를 몰랐던 것 같애요.

 

처음에는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라 칭송하며

노래가사 만들 때마다 끼워 넣었던 사랑이라는 것이로구나!!'

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전 제 마음을 잘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달님이는 제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름대로 상상하고 꿈꿨던

발랄한 여대생 이미지가 아니어서

전 제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학교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학교를 갔더니

저를 보는 친구 선배들이

낄낄거리면서 한마디씩 하더군요.

 

달님이 좋아한다며?”

 

그런데 저는 그 상황이 창피했어요.

 

나는 아직 내 마음이 정리되지도 않았고

어찌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데

놀림받고옆구리 찔리는 그런 상황도 싫었구요.

 

혹시 고백하게 된다 해도

등떠밀리는 듯한 모양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저는 못마땅하게 벌어져 버린 이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애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냥 연애가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을 뿐.

애초에 내가 원하는 여성상도 아닌데

분명히 사귀면 얼마 안되어 헤어질 것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달님이와는

더 더 가까워져 갔습니다.

 

달님이는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다 전해 들었을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

우린 오히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그 다음학기에는 시간표도 똑같이 짰구요.

가을엔 둘이 단풍구경도 가고시험공부도 같이 했었죠.

 

실은.. 매일매일 두근거렸던 것 같아요.

 

시험기간에 밤에 도서관에서 나와 걸으면서

손등이 살풋살풋 스칠 때는.

왜 그리 손에서 땀이 나던지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등신같지만

이상하게도 사귀자고는 못하겠더라구요.

 

너네 언제 사귈꺼냐?”

독촉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았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사귀긴 무..뭘 사귀냐.....”

부정 아닌 부정을 할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던 중에

달님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 친구가 어떤 남자애랑

매일 같이 데이트도 하고 손도 잡고 하는데

남자애가 고백을 안한대걔는 무슨 심리야?”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간보는거지 뭐.

그냥 갖고 노는 걸지도 몰라.”

 




네.

미쳤었나봐요.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지만

우리 관계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어요.

애초에 공식적으로는

친한 친구 그 이상의 무엇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1년이 가고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첨엔 달님이와 저를 포함한 친한 친구들 몇 명이서

만나서 놀자고 했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은 달님이에게 일이 생겨서 파토.

 

스무살이 되어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 저는

저에게 오랫동안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꽃님이에게 문자를 보내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꽃님이는 참으로 기뻐해주었어요.

저와 크리스마스에 길을 걸으며 팔짱을 끼고는

헤어질 때까지 놓지 않았죠.

 

생각해보면 그것이 저의 생애 첫 팔짱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꽃님이가 좋아할수록

저의 마음은 불편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저녁을 먹기도 전에 헤어졌던 것같아요.

 

집에 도착한 꽃님이는 너무 즐거웠다고 문자를 보내왔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달님이에게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느냐,

난 어디를 갔다,

다음에 같이 꼭 가자.”

따위의 말들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방학..


겨울방학 동안에는 달님이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문자나 전화는 매일같이 했어요.


하지만 방학이 길어질 수록...

연락을 매일 주고 받긴 했지만..

그녀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지는 않았던 것 같애요..

 

...

 

개강을 했고

저희는 다시 전처럼 어울려 다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밥 먹으러 갈 때 항상 제 옆에서 걸었던 달님이

다른 친구 옆에서 걷고 있더군요.

 

그때부터 밤에 잠이 안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다른 남자 옆에서 걷고 있는 그녀를 생각하니까

심장이 뛰어서 미칠 것 같았어요.

 

그녀를 처음 본 지 1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에게 고백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화이트데이에 그 애 집 앞에 가서 고백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3월달에 무리를 좀 했던 건지,

화이트데이 전날부터 몸에 열이 불같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미리 사두었던 사탕도 다음날에 주게 되었지요.

그렇게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달님이가 저와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전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후배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그녀는 다른 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힘들었어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도 났습니다.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요.

 


4월 어느날.

저는 가깝게 지내던 후배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저의 첫 연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그 후배와의 시작이

미칠듯한 사랑은 아니었어요.

 

달님이를 놓쳤던 것처럼,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이 아이도 놓칠 것만 같다!'

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후배와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7년쯤을 사귀었습니다.

 

제가 후배와 사귀기 시작한지 한달정도 지나서

달님이도 그 근래 함께 자주 다니던

다른 친구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던 녀석도 제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술을 마시면서 고민을 하길래

얼른 고백하라고 전 부추기기까지 했지요.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의 긴 연애동안..

전 한번도 달님이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달님이에게선 종종..

문자나 전화가 왔었구요.


오는 것은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발신자로 '달님'이라고 뜨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이제 저희는 모두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인이 되었고,

길었던 저의 처음이자 아직은 마지막이었던

후배와의 연애도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달님이와는 친구로서 종종

연락을 주고 받거나 만나기도 합니다.


 

달님이를 보는 지금 제 감정은요..

 


예전같은 설레임은 없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감정이 느껴진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달님이만이 저에게 줄 수 있는 느낌이죠.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주는 의미를 전부 이해하기는 

여전히 참 어려운 것같습니다.


제 주위엔 나이가 찼어도, 

여전히 어린 사랑을 하면서 

자기마음이 무슨 마음인지도 모르는 남자들이 

많이 있기도 합니다. 


제 감정의 정체도 몰라 헤매고, 

표현방법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해

본인이 어떤 짓을 한 줄도 모르는

불쌍한 한국 남자들이지요.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숱한 흉한 사람들.

어쩌면 그들도 지극히 평범한,

사랑에 서투른 사람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서투른 사람들 일일이 가르쳐가면서 

피곤하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람과 인연을 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단지 반하지 않았다고 치부해버리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도 들고 그래요. 




서툴렀던 나의 어린 사랑.

그녀를 향한 향수.

그리고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5월에 햇빛 좋은 날.

이제 그녀도 결혼할 나이인데.. 

좋은 사람만나 행복하게 살기를 빌며 글을 마칩니다. 





생각은 자유롭게 표현은 배려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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