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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소개팅] B형아가씨

2012.07.26 17:10

 

2년 전 처음으로 맞선을 보던 날 있었던 일입니다.

 

1년 정도 사귀던 여친과 헤어진 지

2달 정도 지나가던 어느날.

저녁 식탁에서 어머니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 요즘 00(여친안 만나더라헤어졌니?"

 

". 2달 정도 됐나그래."

 

"그럼 잘 됐다.

(어무이아들은 지금 가슴이 찢어지는데 잘 됐다뇨.. ㅠㅜ)

 

엄마 친구 중에 너한테 여자하나

소개 해주겠다는 친구 있으니까 한번 나가 봐라."

 

"아직 헤어진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소개팅은 무슨.. 아들은 쫌 더 고독을 즐기리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놈이

두달이면 다 정리 해야지 언제까지 궁상떨래?

부모앞에서 궁상도 불효고.

소개도 들어올 때 나가야 하는 법이야."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게 된 소개팅이였습니다. 

 

첫 소개팅으로 경력이 일천할 때긴 했지만,

그래도 강남역 몇번 출구에서 보자는 식으로 만나면

여자분이 싫어한다는 얘긴 어디서 주워들어서

강남역의 파스타 집에 예약도 하고

대학 졸업식때 맞췄던 정장을 빼입고

약속 시간 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타난 그녀는...

 

WWE(미국 프로레슬링)의 라이노.

 

 

 

뚱뚱... 과는 좀 달랐습니다.

 

 

튼실해 보이는 딱 벌어진 어깨.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뜨린 머리카락.

프로야구 선수 홍성흔을 연상케 하는 늠름한 턱.

 

남성적 매력이 강한 누이였어요.

 

저 역시  185cm에 몸무게 100kg에 육박하는

남부럽지 않은 떡대입니다만

이 누이 어깨 너비는 저랑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부진 체격의 로마검투사를 생각나게 하는 그녀의 외모는

남성이었다면 터프한 매력이 있다는 평을 들을지 모르지만,

네. 제 스타일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외모야 처음에는 별로여도

자꾸 보다 보면 눈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호감이 생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일단 웃으면서 자리를 권하고 식사 메뉴를 골랐지요. 

 

저는 알리오올리오

그 분은 펜네 파스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는데.....

 

이 분은 하나부터 열까지 혈액형에 맞춰서

모든 걸 해석하는 능력자였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O형인 아버지 B형인 자신

혈액형 궁합이 맞지 않아서이고,

 

옆에 커플 B형 남자 A형 여자가 만난 게

분명해 보이는데(얼굴만 보고 사람 혈액형도 막 맞추...... 기는 개뿔ㅠㅜ)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화기애애

분위기 연출이 가능하다고 확정을 하더니,

(이쯤 얘기했을 때 옆 테이블의 남녀는 

우리 쪽을 쳐다보면서 한번 피식 웃어 주었죠ㅠㅜ)

 

이번엔 제 혈액형을 맞춰보겠다고 나서더군요.

 

"oo o형 이시죠?"

 

"아뇨. B형인데요."

 

"그럴리가 없는데?

그럼 틀림없이 BO일 거에요."

 

그래.. 네가 BO라 그러면 BO겠지.

여기서 BB라고 우겼다가는 고어라도 맞을라ㅠㅜ

 

고어(Gore) : 달려가서 어깨로 상대 배를 받아버리는 라이노의 피니쉬 기술

 

 

 

 

여기까지야 애교로 넘어가 줄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우리 테이블에 식사 세팅하는 웨이터에게까지

"혹시 A형 아니세요?"

 

 

그렇게 식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먹기 시작하는데.......

 

사실 제가 한때 PC방 게임 폐인이었던 적이 있어서

식사 속도가 남자치고도 좀 빠른 편입니다.

한 손에는 컵라면을 한 손에는 마우스를 들고

어여 먹어야하는 상황이 계속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습득한 기술이지요!

 

그래서 여성이나 높은 사람이랑 식사할 때는

천천히 먹으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만.

 

라이노 누이의 식사 속도

제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였습니다.

 

 

[이거시 펜네]

 

펜네 파스타를 포크로 산적 꿰듯이

4~5개씩 꿰어 가지고 입에 털어넣기가 바쁘게

또 4~5개씩 꿰고.

그 꿰는 동작을 하는 동안 이미!!

입안의 것은 다 삼키고 또 입에 가져가는 과정을 반복.

 

..

저도 식사 매너 가지고 남 얘기할 입장은 아닙니다.

PC방 죽돌이할 때 제대로 익지도 않은 컵라면 한개를

두 젓가락에 해치운 적도 많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처음 보는 남녀가 소개팅을 하는 중인데,

 

워~ 워~  

 

레스토랑에서 머물렀던 시간  24.

식사하는데 걸렸던 시간이 아니라

처음 만나서 주문하고 나온 음식을 다 먹고

일어나면서 확인한 시간입니다.

주문하고도 15분은 기다렸던 것 같은데. ;ㅁ;

LTE급 소개팅이었죠.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잔 더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번에도 찾아오는 웨이터에게 혈액형 물어볼까봐 겁나,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ㅜㅜ

 

그냥 집으로 내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마음에 안드는 아가씨 만난 것도 억울한데,

다음 날 주선자에게 매너까지 지적당하면

더 기분 상할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달까요. 

 

그녀 왈,

"평소부터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면 안될까요?"

 

"예, 그렇게 하세요."

 

어서 커피 한잔 먹여서 집에 보내려는 일념에 

카페가 아니라 놀이터라도

빨리만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분위기가 꽤 괜찮았던 커피 전문점.

 

저는 아메리카노를. 그녀는 카푸치노.

주문을 하려니 그녀가 계산을 하더군요.

기껏해야 돈만원 밖에 안 하는 커피 두잔이었지만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

어쩌면 처음 외모가 마음에 안 들었던 탓에

내가 너무 그녀를 안 좋게만 봤는지도 몰라!!!

이곳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좀 나눠봐야겠다!!!’

 

그 곳의 카푸치노는 보통 머그잔이 아니라

손잡이가 달린 입구가 넓직한 커다란 보울에 주더군요.

 

커피를 받아와 자리에 앉아 다시 얘기를 시작하는데...

 

그녀가 보울을 들어올리더니

'벌컥 벌컥' 커피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식기도 전에 국물만 급하게 마시니

가득 차 있던 거품이 넘쳐 흐를 수 밖에요.

 

그런데...

그런데..

그녀가..

 

그 흐르는 거품이 묻은 카푸치노 보울의 겉면을

혀로 핥는 겁니다.

?

 

설마 내가 잘못 봤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한번 보울을 들고 커피를 마저 벌컥거리더니

흐르는 거품을 또 핥...

 

애교있고 귀엽게 라던지,

야동에 나오는 것처럼 섹쉬하게 핥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냥감을 잡아 먹은 육식 동물

살점이 붙어 있는 를 마저 핥는 느낌이랄까요.

 

저 깔끔떠는 성격도 아니고

친구들하고 밥 먹을 때 급하면 손으로 반찬도 집어먹고

떨어진 것도 없어서 못 먹는 그런 놈입니다만......

 

이성 그것도 처음 보는 이성 앞에서

커피잔을 핥.. .. 핥다니요... ㅜㅜ

 

헤어지고 집에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잘 들어갔냐는 매너문자를 남겼습니다.

7에 만났는데 만나서 밥먹고 장소 옮기고

커피 마시고 헤어져서 멍하니 20분 이상 걷다가 

퍼뜩 생각나 문자를 날린 시간이...

8 40이었습니다.

 

정말 폭풍 같은 소개팅이였습니다.

하아..

 

그리고 그 날 밤.

도저히 그냥은 집에 못 들어갈 듯 해서

친구를 불러서 거하게 소주 한잔 걸친 저는

두달 전에 헤어진 여친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 딱 한번만 더 만나서

우리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천인공노할 찌질이짓까지 ㅜㅜ

 

~ 1년 넘게 사귀면서

단 한번도 보인 적 없는 찌질한 모습을

대판 싸우고 헤어진 후에..

그것도 술에 취해서.. ㅠㅜ

 

그렇게 하이킥 100번쯤으로 슬픈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후쯤 소개팅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00씨는 참 좋으신 분 같아요.

저랑도 잘 맞으시는 것 같구요.

이번 주말에 시간 있으시면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너는 정녕 내가 마음에 들었단 말이냐?

 

근데....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거에요...? ㅜㅜ

 

맞선을 볼 때 매너를 잘 잘 지켜야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저는 답장을 썼습니다.

 

"정말 좋은 분이시지만

저랑은 잘 안 맞으시지 않나 싶습니다.

부디 좋은 분 만나세요."

 

ㅜㅜ

 

이렇게 끗난 얘기가 제 첫소개팅이었다는 슬픈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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